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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2DAY

감성충전 데이트 코스 대학로와 낙산공원 데이트

마음이 고파 대학로에 가다 


문득 마음이 고팠습니다. 배부르게 먹고, 실컷 수다도 떨고, 일도 공부도 열심히 달리는데 자꾸만 허전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이게 바로 ‘정신적 허기’라는 것일까요? 벌써 달력이 두 장밖에 남지 않은 11월. 그간 끝없이 소진하기만 했지 채우지 못한 저를 반성하며 듬직한 d군과 함께 대학로로 향했습니다. 혜화역 2번 출구에서부터 낙산공원까지 d군과 H양의 감성충전 데이트, 이제부터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삶이 흥미로워지는 예술, 여기 있소이다 


오랜만에 찾은 대학로는 변함이 없습니다. 지하철 출구에 올라서자마자 “연극 보러 오셨어요? 좋은 연극 있어요.”라고 전단을 나눠주는 청춘들도 여전합니다. 늘 채용공고에만 익숙해있던 게시판인데 대학로에 오니 공연 팸플릿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시작부터 머리가 가벼워지는데요. 은행나무 가로수를 따라 흩날리는 공연 현수막도 참 운치가 있습니다. 
 


마로니에공원은 공사중이라 북적한 거리공연은 당분간 볼 수 없지만 그 앞, ‘예술은 삶을 예술보다 더 흥미롭게 하는 것’이라고 세워진 문구가 마음에 콕 박힙니다. 그래서 오늘은 결심했지요. 낙산공원에 올라 바람도 쐬고, 오랜만에 뮤지컬도 한편 보기로 말이지요.

시간을 거스른 골목, 벽화로 생기를 더하다 


낙산공원으로 가려면 일단 혜화역 2번 출구로 나와 마로니에 공원을 오른쪽에 두고 쭉~욱 직진해주세요. 막다른 삼거리에서 우회전, 대학로 마로니에소극장까지 몇 걸음 더 걷다 보면 낙산공원으로 가는 표지판이 나온답니다.

낙산공원으로 가는 골목은 참 묘한 매력이 있어요. 시간을 2~30년 전으로 되돌린 것 같다고 할까요? 낡은 슈퍼며, 젓갈집 간판을 그대로 두고 봉제일을 하는 가게며, 중간중간 소박한 찻집까지 죽 늘어서 있거든요. 다만, 비탈길이 다소 힘들어서 d군이 슬쩍 끌어주었답니다. 평소엔 무뚝뚝하지만 이럴 땐 참 듬직한 d군이에요(오홍~)
 

 
참, 낙산공원 가는 길의 또 다른 재미, 벽화도 빼놓을 수 없지요. 낙산공원이 낙타의 등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 거 아세요? 그래서 낙산공원의 상징인 낙타도 만날 수 있고, 그 친구 기린도 만날 수 있답니다. 층층이 좁은 골목에는 강렬한 해바라기 꽃까지 피어있네요. 이런 곳에서는 기념사진 한 장 찍어줘야겠죠. 삶과 예술,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섞여있는 이 골목, 걸을수록 맘에 쏙 듭니다. 

낙산에 올라 서울을 내려다보다 


에고고. 늘 책상 앞에만 있어(그렇다고 공부만 한 건 아니지만요) 체력이 바닥 난 저는 낙산공원 중앙광장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에야 제1전망광장을 향해 다시 오릅니다. 비탈길이 또 이어지지만 호젓한 산책로 분위기라 그리 힘들진 않네요. 더욱이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이곳 저곳 둘러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특히 저희는 운이 좋게도 무지개까지 볼 수 있었답니다. 날씨가 궂다며 d군에게 한참이나 투덜거렸는데 이런 뜻밖의 선물까지 만나다니요. 역시 저희는 역시 하늘이 내린 천생연분인가 봐요(히히). 
 

 
드디어 제1전망광장, 역시 힘들게 올라온 보람이 있습니다. 성곽길 너머 보이는 도심의 풍경도 이색적이고, 울글불긋 제대로 색을 낸 단풍이 정말 곱습니다. 낙산공원은 ‘서울성곽순례길 2코스’에 해당한다고 해요. 다음엔 체력을 다져 서울성곽순례길 탐방에도 나서고 싶습니다.

제1전망광장까지는 종로3번 마을버스가 들어오는데요. 창신역, 동묘역, 동대문역 등을 지나지만 워낙 돌고 도는 코스이니 낭만도 즐길 겸 혜화역에서 살망살망 걸으실 것을 추천합니다. 

성곽길과 낙엽, 사랑을 샘솟게 하다 


며칠 바람이 강하게 분 탓인지 걸음걸음마다 낙엽이 풍성합니다. 그리하여 생각해낸 아이디어! 마음이 고픈 저를 위해 특별 데이트를 마련한 d군을 위해 바닥에 흩어진 낙엽을 모아 하트를 만들어본 것이지요. 색이 너무 곱죠? 저의 울긋불긋한 사랑 표현에 씨익 웃는 d군, 가끔은 이런 닭살 행각도 필요하답니다. 
  


성곽을 따라 제2, 제3전망광장을 향해 걸으니 마음까지 느려지는 듯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습니다. 느리게 걷고 느리게 생각하기,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참, 널찍한 성곽은 올라가 걸터앉기 딱 좋은 모습인데요. 하지만 성곽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라는 사실, 올라가는 건 절대 금물입니다. 저도 살짝 유혹이 있었지만 글쎄 d군이 벤치가 차갑다며 목도리를 깔아주는 것 아니겠어요. 이런 배려남이었다니, 슬쩍 감동했습니다. 아무튼 성곽이 아닌 벤치에 앉아 알싸한 늦가을 정취를 좀 더 여유롭게 만끽했답니다. 

무대의 에너지, 허기진 마음을 채우다 


1시간 정도 산책을 하니 몸이 제법 차가워졌습니다. 제3전망광장 아래로 내려와 주택가 골목을 잠시 걸으니 어느새 대학로의 번화가와 맞닿습니다. 몸도 녹이고, 공연 시간도 맞추기 위해 차 한 잔 마시기로 했습니다. 저는 따뜻한 레몬차, d군은 진한 에스프레소 한잔을 시켰네요. 성격도 다르고 마시는 것도 다르지만 하루 정도는 맘 편히 늦가을 정취를 즐길 줄 아는, 그런 매력적인 커플이랍니다(솔로 여러분, 죄송~ ㅠㅠ). 
 


뮤지컬은 어땠냐고요? 스크린이 아니라 무대 위 배우들의 살아있는 연기를 보는 건 예나 지금이나 참 가슴이 벅찹니다. ‘어떻게 저렇고 고운 목소리가!’라고 감탄하며 노래도 즐기고, 클라이맥스에서는 눈물도 찔끔 흘렸다지요(아닌 척 하지만 d군도 흘린 것 같아요). 중요한 건 허기진 마음이 두둑해졌다는 것 아니겠어요. 
 
쓸쓸한 계절, 마음이 텅 빈 듯하다면 무작정 혜화역에 내려 보세요. 발 길 닫는 대로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채워지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에너지가 이곳 대학로에 가득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