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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icious 2DAY

푸짐한 조개찜과 함께 매화수 한잔! [통영어물전]

여자, 술 한 잔을 청하다



여자들의 술자리는 좀 특별합니다. ‘눈 맞아서’ ‘심심해서’ ‘허전해서’ 수시로 술자리를 갖는 남자들과 달리 여자들이 ‘술 한 잔 하자’라고 하는 데에는 필시 녹록치 않은 사연이 숨어 있습니다. 일상에 큰 변화가 있다는 말이자, 갑갑한 속을 풀어놓고 싶다는 청이고, 제대로 기분전환하고 싶다는 신호이지요. 그러니 발 닿는 대로 들어서기 보다는 특별한 어디에서의 한 잔이어야겠지요.

불편할 정도로 낡지는 않으면서도 마음이 풀어지는 편안한 분위기, 거기다 길고 긴 수다와 인내심 있게 함께 해줄 담백한 안주가 있는 곳이라면 어떨까요? 활기찬 거리 분위기로 1차 기분을 전환을 하고, 푸짐한 해산물과 술 한 잔으로 속내를 풀어낼 대학로 ‘통영어물전’이 딱 그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내 포장마차의 미덕, 아늑하고 따뜻해요



맘 터놓고 이야기하는 데 포장마차만한 곳도 없습니다. 온갖 인생들이 한번쯤 앉았다 갔을 거리의 포장마차에 자리를 잡으면 속 깊은 이야기가 염치도 없이 자꾸 흘러나옵니다. 하지만 요새 좀 춥습니다. 따뜻하고, 화장실도 편하게 오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수다가 절반인 여자들의 술자리니 느긋하게 앉을 수 있는 곳이면 더더욱 환영!

그리하여 거리 포차의 느낌은 제대로이면서 안락하고 포근한 해물포차 ‘통영어물전’에서 발길을 멈추었습니다. 옛날 초등학교 교정에서나 보았던 낡은 미닫이문이 멋스럽게 반기는 이곳에서라면 허심탄회한 이야기가 술술 풀려나올 것 같은데요. 더욱이 통영에서 공수한 싱싱한 해물들이 메뉴판을 한 가득 채우니 술을 마시더라도 다이어트에서 자유롭지 못한 여성들에게 딱 인 곳입니다.

생물 조개찜, 조개의 진수를 만나다



해물포차’의 진가를 맛보기 위한 메뉴라면 역시 ‘생물’. 그 중에서도 뜨끈하게 맛볼 수 있는 ‘생물 조개찜’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세월의 흔적 가득한 양은양푼 품에 꼭 안긴 생물 모듬 조개찜이 등장했습니다. 모락모락 김을 피우는 오징어 아래 손바닥보다 큰 키조개가 위엄을 자랑하시고, 대합, 참조개, 소라, 가리비가 앞 다투어 속살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싱싱한 석화도 대령이오!

▲초장에 찍어 조개살을 쏘옥~



세상을 씹고, 상사를 씹고, 남자친구를 씹으면서 입 안 가득 키조개 살도 함께 씹고, 씁쓸한 내장맛을 자랑하는 소라와 함께 입맛을 다시고, 촉촉한 참조개와 부드러운 가리비에 위안을 받으며 대합의 쫄깃함에 다시 수다 꽃을 피워냅니다. 조개만 한 가득이니 질리지 않느냐고요? 이게 다 같은 조개이던가요. 모양 따라 맛도 식감도 다 다르니 찬찬히 음미하는 재미 또한 쏠쏠합니다. 가끔 오징어가 객원 안주 역할을 해주니 먹고 씹고 수다 떨고 마시고의 즐거운 무한반복이네요. 



매화수 한 모금에 수다 한 대접이오!



여자들의 벼르고 벼른 술자리에는 술도 특별해야겠지요. 매실향 은은하게 감도는 ‘매화수’가 오늘의 위로주이자 응원주로 당첨입니다. 날씬하고 투명한 병에 화사하게 매화 꽃잎이 피어있는 것도 참 예쁜데요. 첫 잔에서 느껴지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매실향에 절로 입맛이 다셔집니다.


한 모금 입에 머금으니 향이 더욱 진하게 퍼집니다. 술을 음미하면서 먹는 게 얼마만이던가요. 알코올 도수 14도의 부드럽고 순한 맛이기에 평소 술을 멀리하던 친구들도 얼굴 찡그리지 않고 한 두 잔 가볍게 넘깁니다. 무엇보다 쫄깃하고 부드러운 조갯살과 환상의 궁합이라는 사실! 바다의 조개와 내륙이 빚은 매실의 만남은 기어이 깊고 깊은 이야기를 끌어냅니다. ‘매화수 품은 조개’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이지요.


칼국수를 두고 발길을 돌리지 마세요 


▲칼칼하고 깔끔한 칼국수

수북하던 조개가 어느덧 껍질만 남기고 사라졌다고 미련 없이 자리를 뜨면 절대(!) 안 됩니다. 밤늦은 시간 너무 많이 먹었다고 젓가락을 놓아도 안 됩니다. 생물 조개찜의 마지막 하이라이트, 칼국수를 건너뛰는 실수만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조개를 찌면서 밑으로 흘러내린 조개 육수에 김치를 넣고 끓여낸 칼국수는 아무리 배가 들러도 후루룩후루룩 목젖을 타고 넘어가게 되어있습니다.

화려한 칼국수는 결코 아닙니다. 그저 김치로 간을 낸 소박한 칼국수인데 조개 육수 때문일까요? 그 칼칼하고 깔끔한 맛이 정말 끝내줍니다. 시원하고 속까지 풀고 나면 걱정도 끝, 고민도 끝입니다. 물론 술기운이 가시면 갖가지 고민들이 다시 고개를 내밀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저 훌훌 털어버리자고요. 술이 좋은 이유가 다 이 때문 아니겠어요?


통영어물전
서울 종로구 동숭동 1-59
Tel.02-763-9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