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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2DAY

[독일생활] 독일인은 맥주를 사랑해! 10. 의외의 장소, 짜릿한 맥주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오전, 바스티와 나는 훈훈한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구수한 커피향과 갓 구워낸 빵 냄새가 실내에 진동했다. “참깨 뿌린 빵 둘, 커피 큰 잔 하나, 주스는 오렌지로 주시고요.” 주문을 하던 바스티가 나를 돌아보았다.
“딸기잼?”
“으흥.”
내가 대답하자 점원은 민첩하고 익숙한 손길로 우리의 아침식사를 차렸다.
접시 위에 치즈와 햄, 살라미가 놓이는 동안 나는 전면이 유리인 냉장고 안에서 맥주를 발견했다. 아침식사를 하러 종종 들렀던 그곳은 카페라고는 하지만 빵집에 가까운 이미지였기 때문에, 아무리 독일이라고는 해도 맥주를 판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조금 신선한 충격이었다. 문득 호기심이 일었다.
“저기, 바스티?”
“응?”
“아침식사에 맥주를 마시면 이상하지 않아?”
“어이쿠!”
점원에게서 쟁반을 받아 들던 바스티가 감탄을 뱉아냈다. 하지만 궁금했다. 농담처럼 말하곤 했지만, 독일에선 아침부터 맥주를 마셔도 정말 이상하지 않은 걸까?

독일인은 맥주를 사랑해!
Die Deutschen lieben Bier!

“소심하긴.”
바스티가 한마디를 던졌다. 그와 나는 보통 푸짐하게 나오는 메뉴를 일 인분 주문하고, 거기에 커피만 한 잔 더 추가하는 식으로 음식을 나눠먹곤 했는데, 이번엔 내 몫의 음료로 커피대신 맥주를 택했다, 특별히 무알코올로. 맥주는 마시고 싶지만 싸구려간의 소유자이다 보니 혹시 아침부터 취할까 염려가 되어서였다.
파울라너 헤페바이쓰 알코올프라이(Paulaner Hefe-weißbier alkoholfrei) 맥주

파울라너 헤페바이쓰 알코올프라이(Paulaner Hefe-weißbier alkoholfrei) 맥주

“옥토버페스트에 갔을 땐 아침식사부터 맥주 마시는 아저씨들을 본 적이 있는데.”
살라미를 올린 빵은 예상대로 맥주와 잘 어울렸다.
“글쎄. 꼭 독일이 맥주를 즐겨 마시는 나라라서 그렇다기 보단 그냥 남의 일이니까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바스티는 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 식당이나 축구경기장처럼 맥주를 마시는 게 자연스러운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독일은 의외의 장소에서도 맥주를 많이 팔잖아.”
“의외의 장소?”
바스티가 되물었다. 
“예를 들면…… 영화관 같은 곳 말이야.”
나는 얼마 전 클라우디아와 함께 갔던 한 영화관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확실히 독특해, 독일 영화관은. 모두 자리에 앉은 후에 적어도 한 30분, 광고와 예고편을 영화의 일부처럼 가만히 보는 것도 그렇고, 광고 끝나면 직원이 ‘아이스크림 드실 분?’하고 관객 사이를 누비며 팔러 다니는 것도 그렇고. 그래도 상영관 안에서 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게 나한텐 제일 신기했어.” 
“한국 영화관에선 맥주를 팔지 않아?”
바스티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파는 곳이 드물게 있긴 하다는데, 마셔보진 않았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칠까봐 걱정도 되고. 그런데 여기선 병맥주는 물론이고 아예 생맥주까지 팔더라고.”
“즐기는 곳이니까.”
나는 바스티의 대답이 내심 놀라웠다.

하기야 정말 그렇다. 한국과 독일에 공히 식사를 즐기는 식당이나 스포츠를 즐기는 경기장, 장거리여행을 즐기는 비행기, 기차, 버스 안에서도 맥주는 언제나 빠지지 않는 음료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오페라나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관람할 때도, 영화관처럼 안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는 없지만, 중간 쉬는 시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맥주를 비롯해 와인과 샴페인 같은 주류를 마신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기억이 분명하진 않지만, 맥주를 팔아 신기하다고 생각했던 장소가 또 있었다.
“예전에 패스트푸드점에서도 맥주를 팔지 않았어?”
내 질문에 바스티는 빙그레 웃었다.
“그걸 기억해? 그랬지. 이, 삼 년 전까지 비트부르거(Bitburger)라고 무알코올맥주를 팔았어. 다른 지역이나 영업소에 따라선 병맥주를 파는 곳도 있었고.”
“역시. 그밖에 슈트라센반(Straßenbahn) 안에서 맥주를 마시는 아저씨들도 종종 눈에 띄더라. 퇴근길에 말이야.“
"맥주 한 병 정도는 술이라기 보다 가볍게 즐기는 음료에 가까우니까. 독일이 한국보다는 좀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편인가 보다."
바스티는 마지막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답했다. 
"아마도."
나도 남은 맥주를 비웠다.
느긋한 아침식사에 마신 맥주는 나름대로 맛이 좋았다. 한국에서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라면 영화관 같은 곳에서 맥주 한 병쯤, 괜찮지 않을까? 상상하며, 바스티와 나는 다시 빗속으로 힘찬 하루를 출발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잠깐! 지나쳐도 될 상식

이번에 알려드릴 ‘지나쳐도 될 상식’은 독일을 여행하실 분들에게는 ‘지나치면 안될 상식’이 되겠는데요, 본문 중에 ‘슈트라센반(Straßenbahn) 안에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다’는 부분은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주시길 바랍니다.
독일의 음주에 관한 법령은 주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예컨대 제가 사는 작센주는 법령이 덜 엄격해서 역이나 슈트라센반 안에서도 도를 지나치지 않는 한 술을 마실 수 있지만, 뮌헨이나 베를린 등지에서는 지하철(U-bahn), 지하철역, 트람(Tram, 혹은 슈트라센반), 버스에서의 음주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법을 준수하는 일도 무척 중요하지만, 즐겁고 안전한 여행을 위해서도 알고 계시면 좋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