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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맥주] 병이냐 캔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모니터를 가득 메운 활자를 멍하니 들여다 보다 화들짝 깼다. 아, 나 졸고 있었구나. 기지개로 몽롱한 기운을 떨치고 일어나 보니 창 밖엔 비가 내린다. 하염없이 주룩주룩. 맥주 딱 한 잔이 생각나는 날씨다. 때마침 핸드폰이 아바의 댄싱퀸을 목놓아 부른다. 액정에 표시된 이름은, 아니나 다를까 세바스티안이다. 전화를 건 사연을 99퍼센트 짐작했지만, 나는 짐짓 모르는 척 받아보기로 했다.

“바스티 (*주: 세바스티안을 줄여서 바스티라고 부르기도 한다), 웬일이야?”
“이작, 비가 맥주를 불러. 딱 한 잔 어때?”

피식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아직 한낮이지만 뭐 어떠랴. 나는 오전부터 맥주를 마셔도 그다지 이상하지 않은 나라, 독일에 산다.

바스티를 알게 된 건 독일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친구의 생일파티에 초대되어 갔다가 그 흔하디 흔한 친구의 친구라는 인연으로 그를 처음 만났다. 서너 시간 동안 겨우 맥주 한 병을 홀짝이는 나에게 바스티가 먼저 “한 병 더 가져다 줄까?”하고 물었다. “아니, 괜찮아. 내가 간이 좀 싸구려라……” 하고 대답했더니, 바스티는 3초쯤 흐른 뒤에 바닥을 뒹굴었다. 뭘 그렇게까지 웃나 싶었는데, 바스티는 그 ‘싸구려 간’이라는 표현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 뒤로 우리는 종종 만나 오늘처럼 ‘딱 한 잔’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독일의 슈퍼마켓 맥주 진열대

독일의 슈퍼마켓 맥주 진열대


“벡스 골드? 귀네스? 라데베르거? 아니면 홀슈타인?”
슈퍼마켓 맥주진열대 앞에서 바스티가 재촉했다. 그 마음을 모르지 않지만, 나는 맥주를 고를 때마다 매번 망설이게 된다. 하루에 한 가지씩 마셔도 독일 전역에서 생산되는 맥주 종류를 다 마시려면 13년이나 걸린다는데, 이 작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맥주 종류만 70여 가지다. 어차피 한두 병 밖에 마시지 못하는 ‘싸구려 간’의 소유자라면, 기왕지사 다양하게 맛보고 싶은 욕구는 인지상정이 아닐까. 그런데 진열대를 꼼꼼히 살피던 나는 문득 궁금증이 동했다. 70여 가지의 맥주 중에 캔맥주는 열두 가지에 불과하다.
“바스티, 독일 사람들은 캔에 든 맥주를 즐겨 마시지 않아?”
내 물음에 바스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그러고 보니 나도 캔맥주는 잘 안 마셔봤는데.”
“있잖아, 바스티. 우리 좀 더 큰 게트랭케마크트(*음료만 파는 가게)에 가보자.”
“좋아. 가는 김에 맥주도 색다른 걸로 골라보자.”
그렇게 또 우리는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헤치며 십오 분 거리에 있는 게트랭케마크트로 향했다.

게트랭케마크트

게트랭케마크트


평소대로라면 자동차 트렁크에 몇 상자씩 싣고 가는 사람들로 붐볐을 음료마켓은 구질구질한 날씨 탓인지 굉장히 한산했다.
“캔맥주가…… 없네?”
“그러게?”
의외였다. 캔맥주는 식스팩은커녕 낱개들이도 아예 없고, 5리터들이 캔 항아리만 있다.


물론 이곳만의 특성일 수도 있겠지만, 종류가 다른 세 가지 병맥주를 사가지고 돌아오는 길에 바스티와 나는 두 가지 추측을 해보았다. 첫째, 맛의 문제다. 바스티는 캔의 금속성분이 맥주 맛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짐작했다. 나는 캔맥주를 선호하는 몇몇 나라의 예를 들어, 독일인의 입맛만 까다로울 리 없다고 반박했다. 게다가 5리터들이 캔 항아리는 독일에도 엄연히 존재하지 않는가. 그래서 둘째, 나는 환경문제해결을 위해 정책적인 차원에서 유리병을 쓰는 게 아니겠냐고 주장했다. 빈 맥주병 값이 10-30센트씩이니 그럴 듯 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스티는 맥주캔도 재활용이 가능하지 않느냐고 받아쳤다.
알텐부르거 페스트비어, 베를리너 킨들 바이쎄, 쯔빅카우어 마우리티우스

알텐부르거 페스트비어, 베를리너 킨들 바이쎄, 쯔빅카우어 마우리티우스


집에 도착해 맥주 세 병을 늘어놓았다. 알텐부르거 페스트비어(Altenburger Festbier), 베를리너 킨들 바이쎄(Berliner Kindl Weisse), 쯔빅카우어 마우리티우스(Zwickauer Mauritius). 오, 벌써부터 뿌듯하다. 자칭 샐러드의 귀재, 바스티가 헤링샐러드를 뚝딱뚝딱 만드는 동안, 나는 빵을 토스트하고 감자칩을 준비했다.

자, ‘독일에 캔맥주가 적은 이유는 과연 맛 때문일까?’

인터넷을 검색하며 첫 번째 맥주 알텐부르거를 땄다.


마개가 독특해서, “뻥!”하고 마치 샴페인 터뜨리는 소리가 난다. 톡 쏘는 알코올향이 살짝 독하다 했더니 함유량이 6퍼센트다. 답은? 두구두구두구…… 땡! 1935년에 처음 맥주캔이 등장하던 시절이라면 몰라도, 현재는 캔의 원료로 알루미늄을 쓰고, 내부에 가공처리를 해서 캔맥주와 병맥주 간에 맛 차이는 전혀 없단다.

그렇다면, ‘환경공해를 방지하기 위한 차원이 아닐까?’
이번에는 150년 전통을 자랑한다고 빨간 띠를 두른 마우리티우스를 땄다.


마우리티우스

마우리티우스


쌉쌀하지만 깔끔하고 구수하다. 답은? 그럴 수도 있다. 캔보다 유리병 쪽이 환경에 기여하는 점은 확실히 인정되었다. 그러나 바스티의 주장대로 맥주캔도 재활용이 가능한데다 빈 맥주캔 값도 25센트씩 쳐주니 유리병을 훨씬 선호하는 이유로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았다.

세 번째 맥주를 땄다. 베를리너 킨들 바이쎄. 꼬마병의 생김새가 너무 귀엽다.

베를리너 킨들 바이쎄

베를리너 킨들 바이쎄


윽, 맥주가 시다? 뒷면을 보니 그냥 마셔도 좋지만, 베를린 전통방식대로 발트마이스터(Waldmeister 우리말로 선갈퀴아재비)시럽이나 라스베리시럽을 작은 잔으로 하나 섞어서 마셔보길 권하고 있다. 그래!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전통 혹은 관습 때문이 아닐까? 사람은 늘 마시던 버릇대로 마시기 마련이잖아.”
나의 말에 바스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그런데 이작, 병이든 캔이든 좋은 사람과 마시니까 좋다.”
바스티는 발그스름해진 양 볼을 움직여 씩 웃었다.
“그래, 좋은 사람이랑 마시니까 좋다.”
우리는 유리잔을 짠 부딪쳤다.

잠깐! 지나쳐도 될 상식
최초의 캔맥주는 1935년 1월 24일, 고트프리드 크뤼거 맥주공장(Gottfried Krueger Brauerei)의 ‘크뤼거 크림 알레 크뤼거(Krueger Cream Ale Kruger)’라는 맥주랍니다. 최초의 알루미늄 캔맥주는 1950년대 초반 쿠어스 브루잉 회사(Coors Brewing Company)였답니다. 현재와 같은 ‘리프트 탭(lift-tab)’ 따개방식은 1962년 피츠버그 맥주공장(Die Brauerei Pittburghs)에서 처음 썼대요.

* 위 정보는 www.bier.de를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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