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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은 맥주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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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맥주] 연기를 머금은 맥주, 라우흐비어(Rauchbier), 독일인은 맥주를 사랑해!14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연애에 완전히 젬병인 것도 아니고, 남자에게 먼저 고백해보기도 처음이 아닌데, 열다섯 소녀마냥 며칠째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서 밤잠을 설쳤다. 무턱대고 바스티를 찾아가서 ‘나 좋아한다며. 나도 네가 좋으니 한번 사귀어 볼까?’하고 말하기도 쑥스럽기 그지 없고, 그쪽에서 먼저 고백해주길 기다리며 은근한 추파를 던지는 짓도 목구멍이 오글거려서 도저히 못할 것 같았다. 그러다 있는 대로 머리를 쥐어짜 겨우 해낸 생각이란 게, 내 손으로 구운 쿠키였다. 지난 크리스마스 파티에 친구들을 위해 쿠키를 구워갔었는데, 내가 구운 줄도 모르고도 바스티가 제법 맛있게 먹었던 기억 덕분이었다. 독일인은 맥주를 사랑해! Die Deutschen lieben Bier! 둥! 두둥! 준비는 완료됐다. 갑작스런..
[독일생활] 독일인은 맥주를 사랑해! 13, 파우스트(Faust)의 고민 2011년이 나흘 앞으로 다가온 날, 드레스덴(Dresden)에 사는 친구인 클라우디아로부터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뒤셀도르프(Düsseldorf)에 사는 고모가 여행 삼아 라이프찌히(Leipzig)를 방문하는데, 겸사로 클라우디아와 나를 식사에 초대했다는 소식이었다. 덕분에 클라우디아는 부랴부랴 라이프찌히행 기차를 탔고, 나는 친구의 고모를 만난다는 사실에 조금 긴장을 했다. 장소는 라이프찌히 시내에 있는 명물 레스토랑, 아우어바흐스켈러(Auerbachskeller)였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파우스트(Faust)'에 나오는 장면으로 유명한, 그러나 나는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었다. 독일인은 맥주를 사랑해! Die Deutschen lieben Bier! "알트비어(Altbier)! ..
[유럽생활] 독일인은 맥주를 사랑해! 12, 슈닉 슈낙 슈눅(Schnick Schnack Schnuck) 가위바위보, 독일어로는 슈닉 슈낙 슈눅(Schnick Schnack Schnuck). 각자는 가위와 바위와 보자기, 세 가지 상징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고, 상대와 내가 서로를 이길 확률이 정확히 같은 만국 공통의 놀이다. 그런데 가위바위보 놀이를 거듭 하다 보면, 이기는 사람에겐 계속 이기고, 지는 사람에겐 계속 지는 경향이 생긴다. 가위나 바위나 보를 내는 찰나의 순간에, 이기는 사람은 상대의 마음을 잘 간파하고, 지는 사람은 상대에게 마음을 잘 들키기 때문인 듯하다. 그래서 가위바위보는 일종의 심리게임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내 생각에 이 심리를 읽는 순간의 재미를 극대화한 놀이가 가위바위보의 변종,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가 아닌가 싶다.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어느 오후, 저녁 내..
[독일맥주] 독일인은 맥주를 사랑해! 11. 쾰쉬와 프랑크푸르터 비는 어제도 내렸고, 그제도 내렸다. 하늘은 오늘도 우중충한 회색빛이니까, 또 비가 오리라는 예상이 충분히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산을 준비한다. 애써 신경 쓴 머리스타일을 망친다거나, 노트북컴퓨터가 젖을까 점퍼 속에 우겨 넣는 불상사를 미리 방지할 수 있으니, 예상할 수 있는 날씨에 감사해야겠다. 거리엔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바이나흐츠마르크트(Weinachtsmarkt, 크리스마스시장)에 쓰일 통나무 상점들이 설치되었다. 작년에도 혼자였고, 재작년에도 혼자였으니까, 올해도 역시 홀로 크리스마스를 보낼 일이 쉽게 예상된다. 로맨틱한 사건이 생긴다면야 좋겠지만, 갑자기 내 인연이 딱 나타나리란 보장도 없다. 그러니 미리미리 약속도 많이 잡아놓고, 재미있는 일들을 계획해야겠다. 예상할 수 있는 외로운 ..
[독일맥주] 가끔은 혼자 즐기는 맥주, 바이첸비어에서 길거리가 한적한 휴일 한낮, 시내입구의 중앙역 앞은 그래도 좀 붐빈다. 사람들은 슈트라센반(Straßenbahn)을 타고 떠나기도 하고, 내려서 종종걸음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특급열차는 아니지만 정류장 한 켠 어딘가에 어린 왕자가 나타나.. "저 사람들 상당히 바쁜데, 뭘 찾아가는 거야?"하고 물어볼 것 같다. 날씨는 얇은 가디건을 걸치기에 적당한 정도로 서늘했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선 여가수가 어쿠스틱 기타반주에 맞춰 담담한 어조로 인생을 노래하고, 슈트라센반이 지나가자 햇살의 따스한 기운이 두 뺨에 와 닿았다. 이런 때면 괜히 묵혀둔 개똥철학이라도 곱씹고 싶은 기분이 되기 마련이다. 독일인은 맥주를 사랑해! Die Deutschen Lieben Bier! 사실 남들 다 쉬는 일요일에 시내에 나온 이유..
[독일맥주] 환상적인 경기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 핸드폰이 또 부른다. 아바의 댄싱퀸을. 머리맡을 더듬어 핸드폰을 찾는 십여 초 동안, 멈춰있던 머릿속에 희미한 전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일년 육 개월째 저 벨소린데 바꿀 때가 되었나 보다, 눈꺼풀이 무거운 건 어젯밤에 먹고 잔 떡볶이 덕분이겠지, 한국대표팀의 첫 승을 자축하는 승리의 떡볶이, 무자비한 한국인 친구 셋이 애지중지 지켜온 나의 냉동실을 털었지, 아! 아까운 내 쌀떡볶이, 부산오뎅, 냉동만두야. “할로.” 잠긴 목소리가 겨우 나온다. 그러게 나이를 생각해서 작작 소릴 질렀어야 했다. “축하해, 이작. 어제 한국팀 정말 잘 하더라.” “바, 바스티?” “응. 근데 목소리가 왜 그래? 어디 아파?” 그래, 아프다. 일요일 아침부터 전화를 걸어 오랜만의 늦잠을 설치게 만든 너 때문에 이 누나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