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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2DAY

[독일맥주] 가끔은 혼자 즐기는 맥주, 바이첸비어에서

길거리가 한적한 휴일 한낮, 시내입구의 중앙역 앞은 그래도 좀 붐빈다. 사람들은 슈트라센반(Straßenbahn)을 타고 떠나기도 하고, 내려서 종종걸음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특급열차는 아니지만 정류장 한 켠 어딘가에 어린 왕자가 나타나.. "저 사람들 상당히 바쁜데, 뭘 찾아가는 거야?"하고 물어볼 것 같다.
날씨는 얇은 가디건을 걸치기에 적당한 정도로 서늘했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선 여가수가 어쿠스틱 기타반주에 맞춰 담담한 어조로 인생을 노래하고, 슈트라센반이 지나가자 햇살의 따스한 기운이 두 뺨에 와 닿았다. 이런 때면 괜히 묵혀둔 개똥철학이라도 곱씹고 싶은 기분이 되기 마련이다.

독일인은 맥주를 사랑해!
Die Deutschen Lieben Bier!

사실 남들 다 쉬는 일요일에 시내에 나온 이유는 단순했다. 한국과 달리 독일은 거의 모든 동네슈퍼마켓이 일요일에 문을 닫는데, 토요일인 어제 장을 봐놔야지 해놓고는 그새 깜빡 잊어버린 것이다. 아차! 하고 텅 빈 냉장고 안을 들여다 봐도 때는 늦었다. 쓰디쓴 커피와 탁자 위에서 딱딱하게 굳어가는 마른 빵 한 조각으로는 도저히 허기를 수습할 재간이 없다. 피자 같은 배달음식을 주문할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그래, 나가서 먹자.’하고 나쁜 머리대신 기꺼이 손발이 고생인 쪽을 택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평소 좋아하던 레스토랑에 간 김에 맥주도 한 잔 주문했다. 언젠가 바스티가 설명해 준 적이 있는 바이첸비어(Weizenbier; 또는 Weißbier 바이쓰비어)다. 바이첸(Weizen)은 한국어로 ‘밀’을 뜻한다. 잘은 몰라도, 맥주의 종류는 발효방법에 따라 상면발효냐, 하면발효냐로 나뉘어지는데, 바이첸비어는 밀 성분을 50퍼센트 이상 넣어 상면발효시킨 맥주라고 했다.
파울라너 바이쓰비어

파울라너 바이쓰비어

오늘의 맥주는 파울라너 바이쓰비어. 밀 성분이 많기 때문에 색도, 맛도 흔히 생각하는 맥주와는 조금 다르다. 색은 불투명한 밝은 갈색이고, 쌉쌀한 맛은 목으로 넘기고 난 다음엔 막걸리의 첫 맛과 비슷한 구수함을 자아낸다. 원래 독일에서 밀은 남부의 바이에른 지방이 주로 생산했기 때문에 바이첸비어는 그 지역의 특산물이었는데, 오늘날엔 그 맛을 사랑하는 사람들 덕분에 독일 전역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바이첸비어와 슁켄케제바게뜨(햄과 치즈를 곁들인 바게뜨) 일습. 잘 먹겠습니다!

바이첸비어와 슁켄케제바게뜨(햄과 치즈를 곁들인 바게뜨) 일습. 잘 먹겠습니다!

바이첸비어 역시 그 종류가 거르지 않은 맥주와 거른 맥주로 나뉘는데, 거른 맥주는 또 흑맥주, 투명한 맥주 등으로 나뉘어져 다양하기가 천차만별이라고 했다. 어떤 곳에서는 주발효를 시킨 후 바로 병에 담아, 맥주병 안에서 마저 발효를 시킨다고 한다. 어떻게든 독특하고 맛있는 맥주를 만들려는 독일 사람들의 노력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목을 축이자 나른함이 쏟아졌다. 가지고 간 소설책을 읽고, 부스러기가 떨어지길 기다리는 조그만 참새들에게 빵 조각을 던져주자니, ‘가끔은 혼자 즐기는 맥주도 좋구나’ 혼잣말이 불쑥 나온다.
마치 팍 퍼져버린 낡은 자동차에 여유라는 연료를 가득 보충한 느낌. 그래서 ‘망중한’이라는 말이 생겼나 보다. 이제 또 한참 앞을 보고 달려가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연료를 보충해 드릴게요.” 길거리 골동품점에 진열된 귀여운 도자기 아주머니

“연료를 보충해 드릴게요.” 길거리 골동품점에 진열된 귀여운 도자기 아주머니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해가 서쪽 지평선 위로 기울었다. 내 발에 이어진 회색 그림자가 바닥에 길게 드리운다. 낮 동안 즐겼던 여유로움은 아직 남았지만, 타박타박 걷는 발이 쫓아가는 그림자는 어쩐지 조금 심심하고 허전해 보인다. 무심코 꺼낸 핸드폰이 갑자기 벨을 울렸다.

  You can dance, You can jive, having the time of your life.

매일 듣던 노래가 새삼 다르게 들리는 건 기분 탓일까. 역시 함께 하는 좋은 사람들이 있어 혼자만의 여유로움도 행복하게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핸드폰 너머로 내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도 친구의 이름을 반갑게 부른다.

잠깐! 지나쳐도 될 상식
‘You can dance, You can jive, having the time of your life.’은 스웨덴 팝 그룹 ABBA의 대표곡 dancing queen 가사의 일부입니다. dancing queen은 뮤지컬 맘마미아의 OST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노래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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