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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2DAY

[독일맥주] 슈니첼(Schnitzel), 맥주의 좋은 친구

한 친구의 친구가 되는
위대한 일을 해낸 사람은,
사랑스런 여인을 차지한 사람은,
그 환희를 함께 하라!
그래, 단 하나의 영혼일 지라도
나의 사람이라 세상에 말할 수 있는 이도 기뻐하라!
그러나 이를 이루지 못한 자는,
울며 이 무리에서 조용히 물러나리라!

- 실러, ‘환희의 송가’ 중에서


독일인은 맥주를 사랑해!
Die Deutschen lieben Bier!


빗방울이 흩뿌리는 날씨에도 프라우엔교회(Frauenkirche)의 내부는 은은한 빛이 감돈다. 천장너머 하늘에서 아기천사들의 합창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배고파, 이작."이라고.
뭐? 하고 뒤돌았더니 마쿠스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다.
"그래, 그만 넋 놓고 밥 먹으러 가자."
킥킥 웃으며 클라우디아가 다가왔다. 나는 프라우엔교회와 먼 하늘을 지긋이 응시하는 마틴 루터의 동상에 안녕을 고하고, 친구들과 식욕을 채우러 나섰다. 역시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프라우엔교회와 마틴 루터의 동상

프라우엔교회와 마틴 루터의 동상

  이년 전까지 한동네에 살다 드레스덴으로 이사를 간 클라우디아는, 지금까지도 무슨 일만 있으면 달려오는 좋은 친구다. 그녀의 생일을 맞아, 이번엔 거꾸로 마쿠스와 내가 드레스덴에 달려왔다. 그런데 어째 우리는 "생일 축하해, 클라우디아."보다 "프로스트! (건배!)"하며 맥주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더 요란하다.
드레스드너 펠젠켈러(Dresder Felsenkeller)맥주

드레스드너 펠젠켈러(Dresder Felsenkeller)맥주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유럽 음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이미 알다시피, 내가 택한 슈니첼은 우리나라의 '돈가스'다. 본래 '자르다'를 의미하는 중세독일어 sniz에서 비롯된 슈니첼은 대표적인 오스트리아 음식이다. 고기를 얇게 잘라 튀김옷을 입혀 튀겨낸 이 음식은 차차 유럽 전역으로 퍼져서 이제는 유럽 음식이 되었고, 영어권 국가에 들어가면서 '커틀릿'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으로 들어가서는 돼지고기를 의미하는 '돈'과 커틀릿을 음차한 '까츠'를 조합해 '돈까츠’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사테소스를 곁들인 슈니첼 비너 아트(Snitzel Wiener Art mit Satesoße)

사테소스를 곁들인 슈니첼 비너 아트(Snitzel Wiener Art mit Satesoße)

그런 연원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돈까스’로 불리는 슈니첼. 두툼한 고기에 바삭한 감자튀김과 아삭한 샐러드가 곁들여지면 맥주와 어울리는 근사한 요리로 탄생한다. 더구나 이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맥주와 함께라면 특별할 수밖에 없다.
  "드레스덴에도 지역 맥주가 많은가 봐?"
  마쿠스의 두꺼비 손과 앙증맞은 맥주잔을 보며 물었다. 클라우디아는 "그럼!"하고 대답을 하더니 잠시 생각하는 표정이 된다. 그러더니 "이작, 혹시 베토벤의 합창교항곡을 좋아해?"하고 생뚱한 질문을 내놓았다.
  "응. 웅장한 합창부분이 멋지잖아."
  "그렇지, 환희의 송가. 그럼 실러도 알겠네?"
  빌헬름 텔의 명장면이 눈앞을 스친다. 아들의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향해 활을 겨누는 텔.
  "빌헬름 텔을 쓴 대문호 실러?"
  "응, 괴테와 영감을 주고받았던 그 실러."
  갸웃거리는 나를 두고 클라우디아와 마쿠스는 눈빛을 주고받는다. 무슨 꿍꿍이일까.
엘베강변의 실러가르텐에서

엘베강변의 실러가르텐에서

  삼십 분 뒤, 나는 '실러가르텐'이라는 레스토랑 겸 카페에 도착했다.
  "실러가 드레스덴에서도 살았어?"
  "응, 그에겐 드레스덴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극복하는 도피처이자 성숙의 요람이었지."
  두리번거리며 묻는 나에게 클라우디아가 설명했다.
  "문학운동을 벌이다가 영주의 눈 밖에 나서 도망치고, 내내 가난하게 살고. 이래저래 힘들었을 때지. 쾰너(C. G. Köner)라는 친구가 그를 도와서 드레스덴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그때 플라이셔셴 솅케(die Fleischersche Schenke)라고 불리던 이곳에 단골이 되었지."
  마쿠스가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실러가르텐에서 만난 또 하나의 드레스덴 맥주, 펜트슐뢰쓰헨(Feldschlößchen)

실러가르텐에서 만난 또 하나의 드레스덴 맥주, 펜트슐뢰쓰헨(Feldschlößchen)

  클라우디아는 그림 속 쉴러가 앉아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강 건너를 바라보았다.
  "그때도 틀림없이 멋졌을 거야. 하염없이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자면 시름을 잊기가 훨씬 쉬웠겠지."
실러가르텐에서 바라본 엘베강의 건너편

실러가르텐에서 바라본 엘베강의 건너편

  "그러고 보면 친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야."
  마쿠스가 중얼거렸다.
  "바스티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말도 마. 세미나 참석한다고 쾰른에 간 애가 일주일이 지나도록 올 생각을 안 하다니. 거기서 만났다는 여자한테 단단히 빠진 모양이야."
  나는 아쉬워서 한 소린데, 마쿠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요새 바스티의 행동이 평소와 좀 다르긴 했다. 전화도 뜸해지고, 클라우디아의 생일도 지나치고.
  "사랑에 빠지면 그럴 수도 있지."
  "나는 너랑 바스티랑 잘 될 줄 알았는데."
  내가 바스티를 두둔하자 클라우디아가 말했다.
  "무슨 소리야?"
  "바스티가 너한테 마음이 있는 줄 알았는데."
  "에이, 아니야. 그냥 친구지."
  웃으며 부인했지만 머리가 혼란스럽다. 이 기분은 대체 뭘까.
프리드리히 실러와 그 친구들의 우정을 되새기며

프리드리히 실러와 그 친구들의 우정을 되새기며


잠깐! 지나쳐도 될 상식
드레스덴은 독일 작센주의 주도(州都)입니다. 프라우엔교회(Frauenkirche)와 쯔빙어궁전(Zwiger), 명성이 높은 젬퍼오퍼(Semperoper)와 퓌어스텐쭉(Fürstenzug)벽화 등 풍부한 문화유산으로 관광객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곳이죠. 또한 체코의 프라하와도 기차로 두 시간 정도의 거리라,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배낭족이 꼭 한 번 거쳐 가는 곳이랍니다. 유유히 흐르는 엘베강과 중세건축물이 어우러진 풍경에 대한 자체한 설명은 이곳 (영문)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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