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 2DAY

[독일맥주] '축구와 맥주 사이' 독일에서 맥주와 즐긴 축구 경기-우루과이와의 16강전

  잘록한 여인의 허리처럼 맥주잔은 유려한 곡선을 그린다. 차가운 황금색 액체가 맥주잔에 찰랑거리면, 찬기를 만난 표면엔 금새 자잘한 물방울이 맺힌다. 작고 탄력 있는 기포가 황금색 액체의 밑바닥부터 뽀글뽀글 피어 오른다.
 꿀꺽. 부드러운 거품이 윗입술을 스친다. 알싸하고 농밀한 그 맛.
 꿀꺽꿀꺽. 관자놀이에 맺힌 땀이 주르륵 볼을 타고 흐른다. 물로도 가시지 않는 목마름이 단번에 사그라진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유월의 마지막 주, 나는 뮌헨의 어느 카페에 앉아있었다.

독일인은 맥주를 사랑해!
Die Deutschen lieben Bier!
  그 주에 나는 일과 관련해서 뮌헨, 슈투트가르트, 로텐부르크, 푸랑크푸르트를 차례로 방문할 예정이었다.
  "그 지역이 맥주로도 유명하지만, 축구로도 굉장히 유명해. 알지? 잘 다녀와."
  집을 떠나기 전 바스티는 내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해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회에 바이첸비어(Weizenbier; 또는 Weißbier)에 대해 쓰면서 큰 흥미를 느낀 데다, 남아공의 축구축제에 홀딱 빠져있었던 터라 유난히 마음이 설레었다.
  그러고 보니 이후 준결증까지 파죽지세였던 독일 축구대표팀의 상당수가 뮌헨과 슈투트가르트에 연고를 두고 있다. 경기 내내 종횡무진하던 슈바인슈타이거나 클로제, 뮐러, 고메즈 선수 등은 바이에른 뮌헨 팀 소속이고, 타스치, 케디라, 카카우 선수가 VfB 슈투트가르트 팀 소속이다. 텔레비전 카메라에 잡히기만 하면 여성시청자의 시청률을 들썩이게 만든다는 요아킴 뢰브 감독도 선수시절 잠깐 VfB 슈투트가르트 팀에서 뛰었고, 1990년대에는 팀 트레이너를 맡았다.
슈투트가르트 메르세데스 벤츠 아레나 앞에서 만난 조형물.

슈투트가르트 메르세데스 벤츠 아레나 앞에서 만난 조형물, 뒤쪽으로 VfB Fan Center의 간판도 보인다

독일어로 한국을 뜻하는 SÜDKOREA라는 글자만 봐도 벅찬 감정이 밀려왔다

독일어로 한국을 뜻하는 SÜDKOREA라는 글자만 봐도 벅찬 감정이 밀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그 지역에서 만난 사람들은 축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자동차엔 두 대 건너 한 대 꼴로 자그마한 독일국기가 달려 있고, "독일 축구대표팀 잘 하던데요. 선전을 기원합니다."라는 말에도 함박미소를 지으며 좋아한다. 특히 슈투트가르트에서 우연히 본 축구동호회는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푸르른 잔디가 펼쳐진 4개 경기장에서 한꺼번에 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그라운드를 누비는 아마추어 선수들에게서 축구에 대한 정렬이 그대로 전해진다.
그렇다면, 맥주에 대한 자부심은?
축구가 다는 아니에요!“ 2006년 바이에른 맥주의 날 기념만화. 출처 바이에른 맥주제조협회(Bayerischer Brauerbund e. V)

축구가 다는 아니에요!“ 2006년 바이에른 맥주의 날 기념만화.

출처 : 바이에른 맥주제조협회(Bayerischer Brauerbund e. V)

'축구'하면 자연히 맥주가 떠오르는 현상은 맥주왕국 독일에서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쉽게 예상하다시피, 독일은 연간 일인당 맥주소비량에 있어서 131리터라는 놀라운 수치로 부동의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뮌헨이 있는 주 바이에른은 수치가 좀 더 놓다. 연간 일인당 170리터를 마신다고 한다. 말하자면 카페 뒷자리에 앉아있던 배불뚝이 아저씨도, 식사를 가져다 주며 싱글싱글 웃던 청년도, 일년 동안 500밀리리터짜리 생맥주 잔으로 340잔을 마신다는 얘기다. 많이 마신다는 사실을 자부심의 척도로 삼긴 어렵겠지만, 무진장 즐긴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또 그 지역에서 소비되는 맥주는 다섯 병 중 한 병 꼴로 바이첸비어라고 하니, 대체 무슨 특징이 있는지 마시지 않고는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그래서 꿀꺽꿀꺽. 크아! 과연 땡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 무더위를 피해 그늘에 앉아 마시는 맥주 한 잔은 사막 한 가운데서 퐁퐁 샘솟는 오아시스를 만난 느낌이다.
로텐부르크의 지역특산과자인 슈니발(Schneeball)

로텐부르크의 지역특산과자인 슈니발(Schneeball)

로텐부르크의 한적한 카페

로텐부르크의 한적한 카페

  바이에른의 작고 예쁜 도시 로텐부르크에 들렸던 날은 대한민국과 우루과이의 16강전이 있었다. 중세건축물이 고스란히 보전되어 있는 그곳은 관광지로도 유명한데, 독일시간으로 오후 네 시, 경기에 임박해 일행과 나는 어느 비어가르텐(Biergarten 주로 여름에 레스토랑의 뜰에 만든 야외석)을 찾았다.
 "한국경기 볼 수 있어요?"
 물었더니 멋들어진 콧수염을 기른 직원아저씨가 시원하게 "그럼요!"를 외친다. 아예 중계전용으로 꾸며놓은 그곳엔 동양인이 달랑 우리 일행뿐이었는데, 이미 자리를 차지한 손님들까지 대번에 한국경기를 보러 왔냐며 환대해주었다.

우루과이전 시작 5분 전, 맥주 마시기도 5분 전

  내내 엉덩이를 들썩이며 보았던 경기는 아쉽게 패배했다. 그래도 후반 23분 동점골에 함께 환호하고, 우리 축구대표팀에게 "잘 했다." 칭찬해준 독일인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발길을 돌렸다. 물론 "4년 후를 기약하자고요."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뢰머광장의 로마병정

뢰머광장의 로마병정

  마지막 일정대로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눈코 뜰새 없이 바쁘기만 하다 여행이 막바지에 달하자 문득 집과 친구가 그리워졌다. 집에 있었다면 분명히 바스티, 마쿠스, 클라우디아 같은 친구들과 방방 뛰며 경기를 봤겠지. 선물용으로 프랑크푸르트의 스카이라인이 새겨진 작은 머그컵을 사고, 나는 바스티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인강변에서

마인강변에서

  뚜르르르. 뚜르르르.
  이상하다. 여러 번 전화해도 바스티는 받지 않는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잠깐! 지나쳐도 될 상식
뮌헨은 매년 열리는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로도 유명합니다. 올해도 9월 18일부터 10월 4일까지 177번째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데요, 독일맥주와 전통문화를 즐기기 위해 전세계인이 모인답니다. 전통의상을 입고 여섯 개씩 생맥주 잔을 들고 다니는 독일아가씨와 나무맥주통에서 맥주를 따라주는 가죽바지 아저씨가 벌써부터 눈앞에 아른거리네요. 자세한 내용은 이곳(영문)을 참조하세요.

지난글보기
2010/06/11 - [Delicious 2DAY/Beer] - [독일맥주] 병이냐 캔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2010/06/18 - [Cool 2DAY/Travel] - [독일맥주] 환상적인 경기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
2010/07/06 - [Cool 2DAY/Travel] - [독일맥주] 가끔은 혼자 즐기는 맥주, 바이첸비어에서
2010/07/16 - [Cool 2DAY/Travel] - [독일맥주] '축구와 맥주 사이' 독일에서 맥주와 즐긴 축구 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