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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2DAY

윤계상, 김규리 주연 영화'풍산개', 분단국가의 씁쓸한 현실을 그리다

좋아하는 이성과 함께 처음 영화를 봤을 때를 기억하는가? 심장이 쿵쿵 뛰고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스크린이 눈에 하나도 안 들어온다. 신경은 바짝 곤두서고 소리는 귓가에 들리는지 마는지, 괜히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릴까봐 노심초사한다. 그렇게 영화관람이 끝나고 나면 영화보는 그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앉아서 뭘 했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만, 그래도 “영화관람 어땠어?”하고 묻는 상대방에게 “이 영화, 아주 재미있었어. 보여줘서 고마워.”라는 대답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것도 스물 몇 살 한때의 이야기. 지금처럼 곧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면 이제 영화 따위는 진부하고 뻔한, 하지만 빼놓으면 어쩐지 어색한 그런 데이트 코스의 하나가 될 뿐이다. 

실수는 의외로 뻔한 연애를 즐겁게 한다

퇴근 후 아슬아슬하게 약속 시각을 겨우 맞췄다. 일찌감치 표를 예매해두었다며 자랑스럽게 말하는 그와 함께 부리나케 영화관으로 향한다. 저녁은 영화 관람 후 먹기로 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출출한 배를 달래줄 만한 게 눈에 띄질 않는다.
‘OO시네마세트’는 왜 몽땅 음료수 혹은 커피와 과자 나부랭이뿐인지. 스낵 코너에 가니 안타깝게도 목을 축여줄 맥주는 팔지 않는다. 곧 영화가 시작할 텐데 뭐-뭐- 제대로 고를 틈이 어디 있겠는가. 급한 대로 “저 세트 주세요”하고 콜라 두 잔과 팝콘, 소시지 하나를 덜컥 샀다.
손에 팝콘과 콜라를 잔뜩 쥔 채 힘겹게 영화 표를 내고 얼른 영화관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영화관 직원이 붙잡는다.
잠깐만요!
우리의 표를 다시 집어든 영화관 직원. 그 모습을 보고 난 '바쁜데 왜 이래?!' 하며 눈썹을 치켜떴는데... 헐, 영화관 직원 말이 티켓에 찍힌 영화예매 날짜가 다음 주란다. 어안이 벙벙해져서 상영관 입구를 다시 나왔다. 물론 손에는 팝콘과 콜라, 소시지 하나를 들고.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어이가 없어 그냥 웃었다. 그런데 이 상황이 묘하게 싫지 않다.
영화관에 마련된 테이블에 팝콘과 콜라를 내려놓고, 다음 주로 예매한 표는 환불했다.
아, 배고파
팝콘을 집어 먹고 소시지도 꺼내 들어 반 나눠 먹었다. 테이블에는 누군가 버리고 간 영화 전단이 놓여 있었다. 바로 윤계상, 김규리 주연의 ‘풍산개’
풍산개나 볼까?
그래, 마음을 먹었으면 어떻게든 실행해야 할 거 아닌가. 이대로 영화 못 보고 집에 가면 꽤 기분 꿀꿀할 것 같다. 자리를 확인해보니 가운데 자리는 앞에서 두 번째 뿐이고, 양 끝 좌석만 남았다고 한다. 목이 부러지더라도 영화는 가운데 좌석에서 봐야 한다는 고집으로 두번째 줄 자리의 영화 표를 끊었다.

영화 '풍산개' - 사랑보다 분단국가의 현실에 더 아프다

주의: 스포일러가 싫다면 과감히 스크롤할 것

‘남과 북, 무엇이든 배달해드립니다.’
라는 카피가 재미있다. 영화 풍산개는 김기덕이 제작과 각본을 맡고 전재홍이 감독을 맡았다. 3시간이면 서울에서 평양으로, 또 평양에서 서울로 뭐든지 원하는 것-심지어 사람까지도! -을 배달해주는 풍산개(윤계상 역)가 주인공이다. 영화 전단지를 대~충 훑어보니 이 영화는 일명 배달꾼(?) 풍산개가 북한 여성 인옥(김규리 역)을 배달(?)하다가 둘이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전단지를 보고 남과 북을 넘나드는 가슴 아프지만 뻔한(?) 사랑이야기를 기대했건만! (실은 별생각 없이 고르긴 했으나..) 이거.. 이거.. 로맨스 영화라기보단 분단의 아픔과 현실의 부조리를 김기덕 스타일로 다룬 영화랄까. 역시 남자의 말과 영화 전단은 별로 기대할 게 못 되는 것이다.

극 중 풍산개로 출연하는 윤계상은 말이 없다. 그는 남과 북 어느 쪽의 편도 들어주지 않고 다만 임진각에서 자신에게 오는 메시지를 기다릴 뿐이다. 바로 철조망 너머로 어떤 물건, 혹은 사람을 전해달라는 요청이 담긴 메시지다. 그는 목숨을 걸고 총알이 날아다니는 철조망을 넘어 이산가족의 한 서린 비디오와 유품 등을 전하는 일을 한다.

그러나 그런 풍산개를 나쁘게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남북의 정보요원들! 그들은 풍산개를 이용하여 원하는 걸 얻어내려 하고, 또 자신들을 도운 풍산개를 고문하며 ‘남인지 북인지’ 대답하라고 요구한다. 인옥을 사랑하게 된 풍산개를 속인 뒤 총으로 쏘고 인옥은 살해한다. 결국 풍산개는 남과 북의 정보요원들을 한 방에 몰아넣고 서로 서로 죽이게 한다.

나라와 나라가 서로 총을 겨누는 휴전국가에서 살고있는 우리들. 평범한 국민들에게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이 마냥 아프고 괴롭다. 이념은 그 다음 문제다. 영화는 분단으로 고통받는 한민족의 모습을 보여주고, 조금이나마 그 아픔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풍산개’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형상화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결국 손에 총을 든 남과 북의 권력 앞에 좌절하고 만다. 나는 이 영화가 분단국가인 우리네 현실과 그 씁쓸함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려고 한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풍산개 포스터 © NEW,2011

풍산개 포스터 © NEW, 2011

영화를 보고나니 마음이 꽤 불편했다. 그렇지, 이게 현실이지 싶으면서도, 북에서 남으로 오는 그 쏜살같은 세시간 사이에 서로 사랑에 빠져 목숨까지 건다는 건 그다지 이해되지 않았다. 윤계상과 김규리의 불같은 키스 장면도 가슴 아프기보다는 헛웃음이 나왔다. 다만 한마디 대사 없던 윤계상의 연기만은 ‘저게 진짜 옛날 GOD의 그 윤계상이었던가?’ 할만큼 감탄스러웠다. (물론 윤계상의 탄탄한 몸과 날렵한 액션도...씁;;)

상영관에 출구를 알리는 불이 들어오고 문이 열리자 우리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손에 잔뜩 들고갔던 팝콘과 콜라는 얼마 먹지도 않은 채 쓰레기통으로 던져 버리고, 고픈 배는 만두와 칼국수로 채우며 허전한 마음을 맥주로 적셔 주었다.
난 말야, 달고 톡 쏘는 콜라 따위보단, 거품 적고 씁쓸해도 속 시원한 맥주가 더 좋아.
만두를 우걱우걱 씹으며 나는 말했다. 세시간 만에 사랑에 빠져 죽음을 넘나드는 키스를 나누는 불꽃같은 사랑보다는, 실수투성이에 놀랄만한 장점은 없어도 없으면 허전하고 함께할 때 편안한 사랑이 더 좋다. 달콤함에 쉽게 중독되는 콜라보다 속상할 때 마음을 확 달래줄 맥주가 좋은 것처럼 말이다. 아아. 사랑의 환상보다는 삶의 안락함을 추구하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스물아홉인걸까?

'풍산개' 조금 더 엿보기

-주연배우인 윤계상과 김규리를 비롯해 모든 배우와 스텝이 노개런티로 참여, 제작비는 2억원 소요. 
-극 중 풍산개는 실은 담배 이름
-최고의 명대사는 아마도 "늬들 짜장면 소화되기도 전에 죽고 싶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