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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맛집] 예술 같은 요리가 나오는 '산당', 음식도 약이 되는 곳

엄마가 아팠다. 큰 병이 없던 우리 가족은 누가 아프다는 사실에 별로 익숙하지 못했다. 엄마가 아파 병원에 입원한 그 한 달. 식구들 모두 정신을 어디다 빼놓은 것처럼 살았다. 엄마는 전쟁처럼 힘든 수술과 재수술을 받았고 결과가 좋아 퇴원하긴 했지만, 옛날 그 활기를 찾지 못했다. 항상 웃음이 가득하던 엄마 얼굴엔 그림자가 들어앉았다.

햇볕이 따뜻하던 어떤 주말. 괜히 우울한 엄마를 억지로 끌고 나섰다. 입맛도 없다며 수술 후 외식 한 번 못한 엄마, 외식은커녕 바람 한 번 쐬지 못한 엄마를 그대로 들 순 없었다. 이럴 땐 그저 가까운 곳에 나가 색다른 거 먹으면서 기분을 풀어야 하는 법이다.

사실 미리 인터넷을 뒤졌고, 양평쯤에 예술 같은 요리를 하는 집이 있다는 걸 알아냈다. 산당이라고 꽤 유명한 집인가 싶어 서둘러 예약도 했던 것이다. 그렇게 중부고속도로를 달려 경안IC에서 퇴촌 쪽으로 가다가 88번 국도를 타고 다시 양평 쪽으로, 바탕골 예술관 조금 지난 곳에서 산당을 찾았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돌길을 걸어 식당으로 들어갔다. 통유리로 만든 집이 예뻤다. 나무 문을 삐걱이며 열고 식당에 들어서니 예상했던 것보단 고즈넉했다. 유명하다 해서 꽤 시끄러운 집일 줄 알았는데 그저 도란도란 소리만 들릴 뿐. 하긴, 다섯 시 반이니 아직 밥때는 안됐다.

[양평맛집] 예술 같은 요리가 나오는 '산당', 음식도 약이 되는 곳

창호지를 바른 낮은 미닫이문을 열고 자리에 앉았다.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두터운 나무 밥상에 앉아 메뉴를 뒤적이다가, 손가락으로 메뉴를 가리키며 이거 주세요 했다. 엄만 가격을 알면 틀림없이 고개를 내저었을 테니, 그저 조용히 메뉴를 고르는 게 상책이다. 메뉴판에는 세 가지 코스가 있었고 그 중에서 5만5천원를 주문했다. 7만7천원짜리는 미리 얘기해야 한단다. 뭐, 이럴 땐 중간을 시키는 거다.

[양평맛집] 예술 같은 요리가 나오는 '산당', 음식도 약이 되는 곳

좁쌀 죽이 나오고, 밀쌈이 나왔다. 고운 푸른색 밀쌈에 당근, 달걀, 버섯, 고추 같은 나물이 나오고 대추와 잣으로 고명을 얹어 싸 먹는 녀석이었다. “참 곱다.” 말하는 엄마에게 잘라 말했다. “오늘은 내가 쌀테니, 엄마는 손하나 까닥하지 마셔.”  서투른 솜씨로 밀쌈을 깔고 속을 넣었다. 돌돌 말아 엄마 입에 한 점. 쑥스러하는 엄마가 예쁘다. “병원에서 아들이 발라주는 생선도 먹어놓고선 왜 그랴.”

“맛있구나.” 강한 맛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묘하게도 달콤하고 고소했다. “엄마, 나 맥주 한 잔 마실래.” 술이라면 질색하는 엄마지만, 오늘만큼은 흔쾌했다. “그래, 엄마가 아들 한 잔 따라 주자.” 엄마가 따라 주는 맥주. 생각해보니 엄마는 내게 맥주를 따라 준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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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나온 바비큐. 둘 위에 얹은 바비큐를 파채가 덮고 있었다. 새우젓에 찍어 파채와 먹는 바비큐라. 삶은 고기라면 몰라도 구운 고기가 이렇게 새우젓과 잘 어울릴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달달하게 씹히는 고기 뒤에 묻어오는 새우젓의 짭짤함과 파채의 상큼함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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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와 빈대떡으로 고픈 배를 채우다 보니 새싹과 함께 간장을 얹은 가리비가 나온다. 씹을 것도 없이 넘어가는 부드러운 가리비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 사이 고수 잎과 함께 갈비 두 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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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에 싸먹으라는데, 고수란 넘 원래 향이 지독하지 않은가? 이럴 때 아들은 영락없는 애다. “엄마가 먹어봐.” 두어 잎 얹어 먹던 엄마가 의외란 듯 놀란 표정이다. “먹어봐. 괜찮은데?” 안 속아 안 속아… 그러다가 한 잎 얹어 씹었는데, 음식의 조화란 참 묘하다. 고수의 강한 향기가 고기를 더 부드럽게 하는 느낌이랄까. 
단호박, 감자, 이름을 까먹은 경단 셋이 나란히 줄지어 나오고 생강채를 튀겨 얹은 다코야끼가 석류씨와 함께 나타났다. 톡톡 튀는 석류씨와 함께 씹는 다코야끼 역시 색다른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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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깜짝 놀란 튀김. 쑥, 연근, 감자를 얇게 썰어 튀겨 왔다. 어떻게 이런 튀김을 만들 수 있을까. 남은 맥주를 입에 털어 넣으며 고소한 튀김을 아삭 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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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달맞이 가는 게로구나.” 유자 소스로 달을 만들고 측백나무 소스로 산을 만들었다. 게 두 마리는 사이 좋게 달을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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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집의 하이라이트. 불 붙인 밤이 나왔다. 달콤한 소스를 바르고 송이에 불을 붙여 구워주는 밤. 활활 타는 밤송이 속에 묻힌 밤은, 따뜻하면서도 고소했다.

[양평맛집] 예술 같은 요리가 나오는 '산당', 음식도 약이 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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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배부르다.”고 말하는데 매생이 국이 나왔다. 갓 구운 조기 두 마리와 간장게장도. 보글보글 소리가 들리는 된장찌개와 나물들, 총각김치, 파인애플로 맛을 낸 백김치까지. 그리고 돌솥에 지은 따뜻한 밥. 배부르다는 건 거짓말이다. 어느 틈에 밥 공기 밑바닥을 박박 긁고 엄마가 남긴 밥까지 먹은 후, 누룽지를 떠 마시고 있었으니 말이다. “엄마 누룽지 더 먹어” “배부르다” “더 먹으라니까” 결국 누룽지가 조금 남았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 사람에 5만5천원. 거기에 부가세까지 내야 하니 싼 건 아니다. 하지만 엄만 모처럼 즐거워했고, 맛있게 잘 드셨다. 그럼 된거지. 날마다 찾아오진 못해도 가끔 이렇게라도 와서 먹을 수 있으면 그걸로 넉넉한 거지. 살면서 가끔은 이렇게 한 번 질러줘야 하는 거잖아.

몰래 다녀온 데이트가 즐거웠나 보다. 그날 이후 엄마는 조금씩 웃었고, 우리 집도 조금씩 환해졌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어두움은 사라지는 법. 꼭 산당에 다녀와서 엄마가 웃은 건 아니었을테지만, 그래도 몰래 데이트가 효과가 없진 않았을 거다. 다음엔 아버지를 모시고 가야겠다.

상호: 산당
전화번호: 031-772-3959
주소: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 운심리 1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