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elicious 2DAY

[독일맥주] 맥주와 소시지의 연애담

  며칠 전이었다. 우리는 사건현장에 있었다. 맥주집과 소시지가 여섯 친구에게 결혼계획을 밝힌 것이다. 여섯 중 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축하를 했고, 나머지 넷은 조금 놀란 표정으로 축하를 했다.
  “세상에. 언제부터 사귄 거야?”
  놀란 표정 중 하나였던 내가 물었다.
  “이사하고 한…… 세 달쯤 뒤부터.”
  맥주집이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했다.
  “맥주가 원흉이지.”
  소시지가 덧붙였다.
  “아니아니, 맥주는 보배야.”
  맥주집은 소시지의 볼에 가벼운 키스를 한다.
부럽다. 서로 다른데, 서로 어울리는 둘은 참으로 축복인 관계가 아닐 수 없다.

독일인은 맥주를 사랑해!
Die Deutschen lieben Bier!

  결혼을 발표한 슈테판과 카타리나는 바스티를 통해 알음알음 사귄 친구들이다. 몇 년 전 슈테판이 처음 자기소개를 했을 때, 나는 풋 터지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었다. 그의 성씨는 Bierhaus(비어하우스)인데, 한국어로 Bier는 맥주고 Haus는 집이니까 성씨의 뜻이 맥주집인 셈이다. 독일에 별별 성씨가 많은 줄은 알았지만, 뜻밖에 '맥주집'을 만나고 보니 괜히 친근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카타리나를 만나서는 도저히 웃지 못했다. 그녀의 성씨는 정말로 Wurst(부어스트), 즉 '소시지'였다.
  만나면 맥주 한 잔에 이야기꽃이나 피우던 둘의 관계는 작년에 슈테판이 카타리나네로 이사하면서 급진전했다고 했다. 점심 때가 다 되어 출출한 김에 우리는 각자 자기 몫의 브라트부어스트(Bratwurst)를 사서 공원잔디밭에 죽 늘어앉았다.
독일의 대표적인 길거리음식 브라트부어스트(Bratwurst) : 본래 브라트부어스트는 다진 돼지고기를 창자에 넣어, 프라이팬에 튀기거나 그릴에 굽는 용도로 만든 소시지를 뜻한다. 길거리음식으로서 브라트부어스트는 구운 소시지를 빵 사이에 끼워 겨자소스나 케첩을 곁들여 먹는데, 때때로 축제에서는 특제 '반 미터 브라트부어스트’를 팔기도 한다. 이름처럼 50센티미터나 하는 소시지다.

  "지난 해 봄, 안넷이 이사 나간 방에 슈테판이 들어왔잖아."
  카타리나가 말했다.
독일에선 많은 청년들이 생활비도 아끼고, 가족처럼 인정도 나눌 겸 한집에 적게는 두셋, 많게는 일곱, 여덟 명까지 함께 모여 산다. 이를 본게마인샤프트(Wohngemeinschaft; 또는 줄여서 WG)라고 하는데, 다수의 WG가 성별에 제약을 두지 않는다. 카타리나의 WG도 마찬가지였다.
"나랑 슈테판은 사실 너무 달라. 예를 들면, 나는 해산물을 좋아하는데, 슈테판은 생선을 전혀 안 먹어. 나는 또 잔잔한 음악이 좋은데, 슈테판은 시끄러운 락을 좋아해. 결정적으로 나는 밤 열 시면 자는데, 슈테판은 거의 새벽 세 시가 되어야 자. 그래서 처음엔 같이 살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어."
"근데 공통점도 많더라고."
그새 브라트부어스트 대신 커리 부어스트(Curry Wurst)를 사온 슈테판이 말을 이었다.
커리 부어스트(Curry Wurst) : 이 역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독일의 대표적인 길거리음식이다. 브뤼부어스트(Brühwurst)나 브라트부어스트(Bratwurst)를 구워 작게 자른 뒤, 케첩과 카레 가루로 양념한다. 전문점에서는 칠리양념을 추가해 매운 단계별로 나눠 팔기도 한다. 보통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한국인도 7단계 중 다섯 번째를 맛있게 먹기 힘들다.

  "예를 들면, 카타리나랑 나랑 둘 다 축구, 맥주, 미스터리영화를 좋아하고, 햄버거와 담배냄새를 무지 싫어하거든."
  "중요한 건 거기서부터 서로 맞춰갈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점이야. 사랑을 하고 연인이 되도, 그런 가능성이 없으면 결혼얘기는 못하잖아."
  두 사람의 얘기를 묵묵히 듣던 바스티가 "쉬운데 참 어렵네."하고는 남은 빵 조각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무슨 뜻인가 싶어 쳐다봤지만, 바스티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말았다.
복부어스트를 곁들인 감자수프(Kartofelsuppe mit Bockwurst). 맥주는 크리스탈바이첸비어.

복부어스트를 곁들인 감자수프(Kartofelsuppe mit Bockwurst). 맥주는 크리스탈바이첸비어.

  시내에서 쌓인 일을 처리한 오늘, 나는 홀로 늦은 저녁식사를 한다. 복부어스트를 곁들인 감자수프를 주문하려는데, 문득 '맥주집 군'과 '소시지 양' 생각났다. 그래서 잘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맥주를 추가했다.
  바스티가 중얼거렸던 말이 가만히 떠오른다. 나도 동감이다. '서로 맞춰갈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쉬운데 역설적으로 참 어려운 일이다. 꼭 결혼이 아니어도 친구간이나 가족간에도 노력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쩌면 더 큰 의미에서, 인간관계 자체가 참 쉬운데, 또 세상에서 가장 어렵지 않을까.

잠깐! 지나쳐도 될 상식
지난 '달콤한 맥주, 쌉쌀한 맥주' 편에 실었던 "비어 비어 비어(Beer Beer Beer)"를 들어보셨나요? 여기 '소시지와 맥주송'도 있답니다!
"Achtung! Auchtung! 주목! 주목!
Wurst! Wurst! Wurst! 소시지! 소시지! 소시지!
Kindergarten Autobahn 유치원 고속도로
Wurst! Wurst! Wurst! 소시지! 소시지! 소시지!
Willkommen im Wunderland! 이상한 나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Wurst! Wurst! Wurst! 소시지! 소시지! 소시지!
Sauber trinken Hildegard 깨끗하게 마셔요, 힐데가드(여자이름)
Prost! Prost! Prost! 건배! 건배! 건배!
Claudia, Heidi, Krautsalat 클라우디아, 하이디, 야채샐러드
Yuhuu! 유후!
Wurst! Wurst! Wurst! 소시지! 소시지! 소시지!
Fußball Fräulein bitteschön 축구 처녀 부탁해요
Durst! Durst! Durst! 목말라! 목말라! 목말라!
Germany ist wunderschön! 독일은 아름다워요!"

지난글보기
2010/08/18 - [독일맥주7] 달콤한 맥주, 쌉쌀한 맥주
2010/07/30 - [독일맥주6] 슈니첼(Schnitzel), 맥주의 좋은 친구
2010/07/16 - [독일맥주5] '축구와 맥주 사이' 독일에서 맥주와 즐긴 축구 경기
2010/07/06 - [독일맥주4] 가끔은 혼자 즐기는 맥주, 바이첸비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