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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2DAY

뱀 껍질 붉은 사막과 선인장 와인, 콜롬비아 타타코아

엿가락처럼 늘어진 황톳길, 시간마저 녹아내릴 듯하다. 비자 비에하(Villa Vieja) 행 버스 안, 90도로 꺾인 고장 난 의자에 앉아 반쯤 정신을 놓고 있다. 찜통 속 내던져진 빨랫거리 마냥 꾸깃꾸깃 구겨 앉아 땀을 닦아내는데 흙먼지가 한 움큼 묻어난다. 울상을 한 것은 나뿐, 앞자리에 앉아 들려오는 살사 음악에 고개를 까딱이는 저 속눈썹 짙은 콜롬비아 소년은 익숙한 이 길이 마냥 즐거운 모양이다.
비자 비에하 마을 중심의 성당

비자 비에하 마을 중심의 성당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서 네이바(Neiva)로 7시간, 다시 비자 비에하로 1시간. 타타코아 사막(Desierto de la Tatacoa)을 가기 위해 들려야 하는 이 비자 비에하 마을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전통 마을이다. 흰색 벽돌과 초록색으로 칠해진 문이 돋보이는 전통가옥들이 주욱 늘어진 광경은 사실 콜롬비아에서 지루할 정도로 많이 본 모습이다. 숙소에 짐을 풀고 거리로 나와 어그적 걷고 있는데 동양인을 거의 처음 본 듯한 눈빛의 마을 사람들이 내 손짓 하나에까지 시선을 고정한다. 일부러 찌링찌링 자전거 종 소리를 내던 꼬마가 옆으로 휭 지나간다. 텁텁한 사막 공기가 훅 몰아친다.
‘붉은 뱀’ 이라는 뜻의 사막 타타코아의 압도적인 광경

‘붉은 뱀’ 이라는 뜻의 사막 타타코아의 압도적인 광경

여행을 하다 보면 종종 모종의 환희에 빠질 때가 있다. 세상에 진짜 오지는 없다지만, 사람들의 손을 덜 탄 날 것의 풍경을 처음 접했을 때 받는 황홀함은 글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타타코아 역시 그러하다. '죽은 뱀'이라는 뜻의 사막 '타타코아'. 바짝바짝 갈라진 껍질 같은 붉은 땅. 사막의 태양 볕 아래 구불구불한 몸을 비틀다 그대로 화석이 된 듯한 모양의 붉은 뱀 수백 마리가 뒤엉켜 누운 듯한 곳.
뱀 껍질 붉은 사막과 선인장 와인, 콜롬비아 타타코아
타타코아는 크게 붉은 사막과 은회색 사막으로 나뉘어 있다. 처음으로 등장하는 천문대 앞 전망대에 도착하면 하이라이트가 너무 빨리 나타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화려한 붉은 사막이 나타나는데, 사실 진짜는 그 이후에 있다. 갈라진 능선을 따라 조심조심 내려가는 코스에 도착하면, 직접 가벼운 트레킹을 하며 붉은 사막 위를 걸어볼 수 있다.
뱀 껍질 붉은 사막과 선인장 와인, 콜롬비아 타타코아
사막에 핀 분홍색 선인장 꽃

사막에 핀 분홍색 선인장 꽃

황토색 모래밭 위로 기괴한 모양의 선인장이 비쭉비쭉 솟아있는 것이 서부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기도, 분화구 모양으로 뻥 뚫린 암석 형상이 꼭 달의 사막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말라 비틀어져 죽은 검붉은 뱀 껍질이 우툴우툴 나 있는 듯한 구릉 모습이나, 초록색 넝쿨과 분홍색 선인장 꽃이 듬성듬성 피어 있는 광경은 호흡을 멈추게 할 정도의 장관이다.
타타코아 은회색 사막

타타코아 은회색 사막

타타코아 사막, 이 곳은 콜롬비아 안에서도 매니악한 곳이지만, 콜롬비아(Must See)로 꼽힐만한 자격이 충분한 곳이다. 여행자의 호흡마저 붉게 갈라지는 곳, 붉은 뱀처럼 몸을 뉘은 붉은 땅 타타코아,
뱀 껍질 붉은 사막과 선인장 와인, 콜롬비아 타타코아

누가 적어 놓았을까? 전망대 기둥에 새겨진 멋진 글귀, "Life is so beautiful" 탁 트인 장관 앞 붉은 모래 바람을 맞으며 인생은 정말 멋진 것이라고 되뇌였을 수 많은 여행자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톡 쏘는 듯 독특한 향을 지닌 선인장 와인

이곳에서는 또한 선인장으로 만든 와인과 디저트를 맛볼 수 있는데 그게 또 별미이다. 선인장과 그 꽃에서 추출한 독특한 성분으로 만들어진 쌉싸레한 와인과, 쫀득쫀득 달콤한 선인장 젤리. 심지어 선인장으로 만든 샴푸와 로션, 비누도 있다. 여러모로 독특한 곳이 아닐 수 없다.
 
달콤하고 쫄깃한 선인장 젤리

텁텁한 사막 바람 잔뜩 쐬며 돌다 보면, 이곳 한가운데 덜렁 놓인 숙소 ‘토성의 밤’이 있다. 태양열 전지로 겨우겨우 불을 켜는 작은 전구 한두 개가 문명의 전부인 이곳에서 밤새 모기와 씨름하며 푸닥거리기를 한참, 잠을 못 이루고 밖에 나와보니 쏟아지는 별이 밤하늘 한 가득하다. 시커먼 사막 땅 휘영청 비추는 달빛 덕분에 주위는 온통 은빛이다. 더 맑은 날에는 천체망원경으로 온갖 행성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밤에 일어나 마신 선인장 와인

밤에 일어나 마신 선인장 와인

아무도 없는 밤, 그 흔한 동네 강아지 짖는 소리나 한 번쯤 지나갈 법한 차 소리, 사람 발걸음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적막한 밤, 홀로 밖에 나와 긴 의자에 앉는다. 사막이 만든 와인을 따 슬쩍 입에 대 보았다. 찌르듯 넘어가는 첫맛, 시큼한 포도 냄새와 따가운 풀잎 향이 어지럽게 엉겨 들어간다. 달콤하고 따가운 선인장 향이 조금 낯선 듯하지만, 의외로 한 두 잔씩 홀짝홀짝 넘기기 좋다. 다시 한번 잔을 채운다. 귓등에 스치는 사막의 바람과 바람이 간지럽다. 밤빛에 눈이 시리다.

* 콜롬비아의 타타코아 사막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계속됩니다,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