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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 2DAY

[책읽는계절]비투지기가 추천하는 ‘가슴으로 만나는 감동 소설 4편’

 

 

인생 최고의 책을 만날 기회


가끔 가볍게 든 책 한 권에 고개가 숙여질 때가 있습니다. 역사서도 인문서도 아닌 소설 한 권이 낯선 문화와 역사 그리고 인생의 희로애락을 깊숙이 파고들며 마음을 울리면 말이지요. 방 한구석에 앉아 도미니카공화국의 독재정권, 미국의 911테러, 아프가니스탄의 전쟁,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정권 변화를 머리와 가슴으로 새길 수 있는 기회, 역시 책이 아니면 통할 수 없는 특권이지요. 딱딱하지 않으면서도 묵직하게 배우고 감동을 얻는 소설, 어쩌면 당신 인생 최고의 책으로 남을 수 있는 4권의 소설을 추천해봅니다.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문장의 맛도 일품이고, 배경이 독특한 만큼 작가들의 이력이 소설 속 주인공과 닮은 점도 흥미롭답니다.

 

 

 

역사와 운명 그리고 인생의 이야기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 주노 디아스 저

 

 

 

먼저 가볍게 시작해볼까요. 제목과 표지부터가 발랄한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은 중남미의 작은 나라 도미니카공화국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웬만해선 접하기 힘든 신선한 배경이지 않나요. 소설은 오스카 와오를 비롯해 그의 누나 롤라, 어머니 벨리시아와 할아버지 아벨라르에 이르는 3대의 연대기이자 31년간 독재를 휘두른 트루히요 정권 아래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한 나라의 이야기라 할 수 있는데요. 여기에 과거나 현재나 사라지지 않은 ‘푸쿠’라는 악령이 시종 긴장감을 더하지요. 책을 읽기 시작하면 ‘도미니카공화국’ ‘트루히요’를 검색해볼 수밖에 없을 만큼 낯선 시공간이지만 이들 가족의 이야기는 전설을 들려주듯 아득하기도 하고, 무용담처럼 호기롭기도 하며, ‘진실 혹은 거짓’처럼 미스터리하기도 합니다. 짧고 재치 있는 문장, 농담 같은 이야기들은 빠르게 읽히지만 전체를 관망하며 한 박자 쉴 때마다 묵직한 것이 와 닿는 알 수 없는 기분, 그리고 책장을 다 덮고 나면 이것이 ‘삶’의 무게였음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답니다. 작가 주노 디아스는 이 첫 장편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21세기를 빛낼 작가로 급부상했는데요. 소설 속 오스카의 가족처럼 도미니카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해 살아온 이력이 있네요. 도미니카계 미국인이 주인공으로 엮인 소설집 ‘드라운’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상실과 치유 그리고 사랑의 이야기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 조너선 사프란 포어 저

 

 

 

여기 또 다른 오스카가 있습니다. 아마추어 발명가이자 탬버린 연주자이며, 셰익스피어의 연극배우, 보석세공사이면서 평화주의자인 아홉 살 오스카는 9.11 세계무역센터 폭파 사건으로 아버지를 잃고 맙니다. 마지막 통화의 주인공은 불행인지 행운인지 바로 오스카였지요. 호기심 많은 괴짜 같기도 하지만 아직은 마음 여린 아이일 수밖에 없는 오스카는 아버지의 유품 속에서 열쇠 하나를 발견하고 이 정체를 밝히기 위한 모험을 감행하지요. 커다란 상실과 불안의 구멍을 안고 열쇠의 정체를 탐문하는 그는 가지각색 사람들의 슬픔과 상실, 그리고 사랑과 마주하게 되지요. 알듯 모를 듯한 제목처럼 소설은 내내 불안합니다. 극적인 사건이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의 마음이 스며들어 불안하고 허전하고 아프고 또 사랑스럽기도 하지요. 특히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인 오스카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관계는 가슴 뻐근하게 다가옵니다. 그런데도 책을 다 읽고 나면 치유되는 기분, 감기를 앓고 난 후의 개운해진 기분이 드니 신기한 일이지요. 그리고 언젠가 마음에 구멍이 생겨 흔들릴 때 다시 한번 꺼내 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함께 앓으며 치유를 선물하는 소설 한 권쯤은 곁에 두는 것도 좋겠지요.

 

 

배반과 참회 그리고 성장의 이야기 ‘연을 쫓는 아이’ /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9.11로 주목받은 나라 아프가니스탄. 여러분은 ‘그곳’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나요? 맞습니다. ‘전쟁’이지요. 우리에겐 ‘언제나, 늘’ 전쟁만 했을 것 같은 나라이지만 아프가니스탄에도 평범한 삶이, 친구들과 언덕에서 신나게 뛰놀 수 있었던 그런 시절이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어쩌다 우리는 ‘그들도 전쟁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놀랍게 받아들이게 됐을까요. 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오래 둘 새도 없이 이야기는 이내 아프가니스탄의 굴곡진 역사와 두 소년의 드라마틱한 운명으로 끌어들입니다. 우정과 성장의 이야기이자 죄책감과 속죄의 참회록, 그리고 아픈 역사의 생생한 일지가 펼쳐지는 동안 ‘격정’의 독서에 빠져들게 됩니다. 몇 번이고 마음이 울컥하고, 주인공들의 행복을 정말 간절하게 바라며 조심스레 책장을 넘기게 되지요. 주인공 소년 아미르는 친구이자 하인이었던 하산을 배신하게 된 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괴로워서 멀리하게’ 됩니다. 그것이 평생의 굴레가 될 줄은 미처 몰랐겠지요.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을, 내면의 슬픔을, 세상의 잃어버린 정의를, 들여다 봐야 할 수많은 것들을 보고 있기 괴로워 멀리하지는 않나요? 아프가니스탄이 사람 사는 땅임을 새삼 상기시켜준 이 책은 어느 누구에게든 전쟁과 상처가 ‘당연한’ 것이 아님을 가슴 저리게 알려줍니다.

 

 

권력과 욕망 그리고 생명의 이야기 ‘추락’ / 존 쿳시 저

 

 

 

마지막으로 아프리카로 가보겠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학에서 낭만주의 시를 강의하는 50대 이혼남인 백인 교수. 눈에 띄지 않게 그럭저럭 살아가기에 적당한, 욕망은 가득하나 열정은 부족한 그에게 어느 날 미세한 삶의 균열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것이 상상치도 못했던 거대한 소용돌이까지 마주하게 만들지요. 제자와의 관계 때문에 학교에서 탄핵된 것이 그나마 작은 균열이었다면 혼자 사는 딸이 소유한 흑인 지역의 농장에서 함께 지내며 더 큰 균열을 만나게 됩니다.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배경이 백인정권이 종식되고 흑인에게 정권이 이양된, 권력의 미묘한 관계들이 혼재된 혼란의 시대임을 미리 알아두는 게 좋겠습니다. 백인식민주의의 잔재는 여전히 곳곳을 떠다니고 이에 대한 흑인들의 적대감은 커지고, 이를 의식한 백인들의 위기의식까지 섞이며 소설은 내내 팽팽한 긴장의 공기가 흐릅니다. 폭력의 가해자인 이들이 또 피해자이고, 피해자인 이들이 또 가해자이기도 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모습을 딸과도 섞이지 못하고 세상과도 타협하지 못하며 절망의 바닥까지 치는 한 남자를 통해 끈질기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마지막 문장까지 다 읽고서도 이야기가 계속되는 느낌, 그것은 비극도 희극도 아닌 묘한 진동을 선사합니다. 우리네 삶이 그렇듯이 말이지요. 격동하는 시대를 이토록 담담하게, 한 인간의 시선으로 유려하게 펼쳐낸 작가 존 쿳시는 이 작품으로 2003년 노벨 문학상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지요. 남아프리카 네덜란드계 백인으로 케이프타운대학 영문과 교수로 재직한 그의 이력은 소설 속 주인공과 상당히 겹쳐 있답니다.

(이미지 출처: 알라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