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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2DAY

재즈에 취하고 자연에 취했던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

재즈의 계절, 가을이 돌아왔습니다. 여름내 락을 불태우던 그린데이도 요즘 시원해진 바람에 어울리는 느슨한 재즈를 즐겨 듣고 있는데요. 내친김에 지난 주말엔 멀리 국제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는 자라섬에 찾아가 가을 정취를 흠뻑 느끼고 왔습니다. 부쩍 차가워진 기온에 입에서는 입김이 나오는 추운 날씨였지만 별이 총총히 뜬 가을밤, 캠핑장에서 숯불에 고기를 구우며 들었던 재즈 선율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습니다. 자연과 음악, 그리고 내가 하나가 되는 감동은 야외 재즈페스티벌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기분이 아닐까요?


올해로 벌써 8회째를 맞는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은 지난 10월 1일부터 사흘간 자라섬과 가평읍 일대에서 열렸습니다. 이번 페스티벌은 주말에 연이은 개천절 휴일에 개최되어 사상 최대의 인파가 자라섬을 찾았다고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저도 서울에서 보통 1시간 반이면 닿을 거리를 교통체증 때문에 4~5시간 걸려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8시쯤 도착해서 하이트진로 캠핑장을 찾고 짐 정리를 하다 보니 벌써 해가 다 져버렸더군요. 서둘러 바베큐 그릴에 불을 피우고 달빛을 등불 삼아 고기부터 굽기 시작했습니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하늘엔 달도 밝고 별도 많더군요. 하지만 어둠이 내리면서 점점 더 쌀쌀해지는 자라섬. 덕분에 운영진께서 챙겨주신 드라이피니시 d는 자연 냉장이 되어 딱 마시기 좋은 온도가 되었죠. 제아무리 날씨가 추워도 맥주는 시원해야 제맛 아니겠어요? ^^ 맥주 외에도 소주와 텀블러, 핫팩, 무릎담요 등을 챙겨주셔서 요긴하게 잘 썼습니다.

저녁도 먹었겠다~ 슬슬 본공연이 열리는 메인 스테이지 Jazz Island(자라섬 중도 잔디광장)로 향해봅니다. 공연은 저녁 5시부터 새벽 2시까지 열렸는데요. 첫날은 김나현의 오프닝을 시작으로 10인조 펑크 소울 밴드 타워 오브 파워, JK 김동욱 재즈 트리오인 지브라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저는 사실 JK 김동욱의 공연이 무척 보고 싶었지만, 자정이 넘은 늦은 시각에 시작되고, 날씨 또한 급격히 추워져서 아쉬운대로 캠핑장내 공연장에서 인디밴드 '아시안 체어샷'의 락 공연을 봤습니다. 의외로 저희 같은 분들이 많았는지 공연장은 빈 좌석이 없을 정도로 북적이더군요. 열기 또한 대단했습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재즈 음률에 취해 비몽사몽 잠이 든 것이 새벽 1시쯤이었을까? 어느덧 텐트로 스미는 따뜻한 기운에 눈을 떠보니 밖에는 물안개가 자욱이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싱그러운 아침 공기를 만끽하며 조용히 아침 산책에 나서봅니다. 


옆 텐트에 놀러 가 모닝커피를 마시며 장작불도 함께 쬐고, 캠핑의 낭만과 노하우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도 나눠보고요. 
  

어제 밤 짐도 날라주시고, 핫팩도 두둑이 챙겨주시던 운영진과 인사도 나눴습니다. 늦게까지 이것저것 챙겨주셨는데 또 새벽부터 나와계시더군요. 고생하신다며 사진 한장 찍어 드리려고 했는데, 처음엔 좋다시더니 쑥스러워하시네요. (하지만 저, 이거 올릴 거라고 말씀드렸어요~! ㅎ) 


갈대숲 건너편의 고즈넉한 풍경을 감상하며 텐트로 돌아왔는데, 어느새 남편과 아이도 일어나 산책하러 나갔네요.

캠핑의 백미는 아침에 끓여 먹는 라면에 있다고도 하죠~ 평소엔 라면을 잘 먹지 않지만, 막상 코펠에 물을 올리고 보니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기분 좋게 들립니다.

아침에 일어나 텐트 지퍼를 올렸는데 바로 앞에서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다면, 촉촉이 비가 내리고 있다면, 단풍잎이 소복이 쌓여 있다면... 어떨 것 같으냐는 옆 텐트지기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람들이 왜 캠핑에 열광하는지, 왜 가을과 초겨울이 캠핑의 계절이라 불리는지 알것 같더군요. 한껏 감상에 젖어 있는데, 제 시야로 딸아이가 들어옵니다. 잔뜩 껴입은 겨울옷과는 어울리지 않게 코스모스 한 송이를 들고서 말이죠. ^^

안개가 걷히면서 날씨는 지난 밤과는 다르게 점점 따뜻해졌습니다. 한껏 높고 푸르러진 가을하늘로 색색의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 있네요. 낚시를 나가셨던 옆 텐트지기께서 베스 한 마리를 잡아오셨습니다. 자라섬도 북한강변에 있는 섬인지라 물고기가 꽤 많다네요.   

어젯밤 늦게까지 공연보고, 추위에 잠을 청하느라 힘들만도 한데 부지런히 자연을 즐기는 사람들. 여유가 느껴집니다.

아이에게는 캠핑장 전체가 놀이터입니다. 어느새 옆 텐트로 놀러 간 딸내미는 새로 사귄 언니와 함께 갈대 놀이를 하고 있네요. 팔을 쭉 뻗은 후 바람의 방향에 맞춰 갈대처럼 몸을 흔들~흔들~

유료공연은 저녁부터 시작되지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무료공연은 점심 무렵부터 계속됩니다.
 

마침 영국을 대표하는 스윙재즈 싱어인 '던컨 갤러웨이 퀸텟'의 공연이 있어 잠시 잔디밭에 앉아 음악을 즐겨봅니다. 'Fly to the moon'같은 익숙한 곡들을 위주로 리듬을 타며 관객과 호흡하고 흥겹게 연주하는 그들을 보니 며칠이고 이곳에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과 스윙재즈는 정말 잘 맞는 궁합인 듯. 한국 공연을 위해 준비했다며 재즈 버전으로 편곡한 나훈아의 무시로도 한 곡 불렀는데, 호응이 정말 좋았습니다.   
 

재즈와 자연, 사람들... 모두 기억에 남지만 제가 무엇보다 좋다고 느꼈던 건 사람들이 음악을 즐기는 '자세'였습니다. 풀밭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연인이나 가족의 무릎을 베고 누워, 혹은 악기로 리듬을 따라 하며, 피크닉을 즐기며, 와인과 맥주를 마시며 각자의 방법으로 재즈를 즐기는 모습에서 진정한 여유와 자유로움이 느껴졌달까요~ 인생을 즐기고 음악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재즈에 취하고 자연에 취했던 자라섬에서의 가을... 그린데이 가족의 가을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