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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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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맥주] 독일인은 맥주를 사랑해! 11. 쾰쉬와 프랑크푸르터 비는 어제도 내렸고, 그제도 내렸다. 하늘은 오늘도 우중충한 회색빛이니까, 또 비가 오리라는 예상이 충분히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산을 준비한다. 애써 신경 쓴 머리스타일을 망친다거나, 노트북컴퓨터가 젖을까 점퍼 속에 우겨 넣는 불상사를 미리 방지할 수 있으니, 예상할 수 있는 날씨에 감사해야겠다. 거리엔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바이나흐츠마르크트(Weinachtsmarkt, 크리스마스시장)에 쓰일 통나무 상점들이 설치되었다. 작년에도 혼자였고, 재작년에도 혼자였으니까, 올해도 역시 홀로 크리스마스를 보낼 일이 쉽게 예상된다. 로맨틱한 사건이 생긴다면야 좋겠지만, 갑자기 내 인연이 딱 나타나리란 보장도 없다. 그러니 미리미리 약속도 많이 잡아놓고, 재미있는 일들을 계획해야겠다. 예상할 수 있는 외로운 ..
[독일맥주] 오래도록 곁에 있는 그 사람, 그 맥주 뜨겁다. 입안이 바짝 마른다. 가을로 들어서는 문턱에서 나는 그만 감기에 함빡 들어버렸다. 아이고, 머리야. 아이고, 목이야, 혼자 끙끙 앓으려니 처량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텅 빈 방에 덩그러니 누워 ‘세상에서 제일 아픈 병은 어쩜 암 같은 중병이 아니라 혼자라는 느낌일 거야’ 한탄하다가 선잠에 들었다. 멀리 부모님의 얼굴이, 한국에 있을 절친한 친구들의 모습이 자꾸만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감은 눈에서부터 생긴 아릿한 기운은 코끝을 찡 울리고 사라진다. 결국 혼자라는 느낌은 감기처럼 내성이 짧다. 딩동. 누군가 벨을 눌렀다. 그런데 만사 귀찮으니 깨기가 싫다. 귀찮아서 무시하고 싶은데 잠결에도 배는 고프다. 아플 땐 좀 허기가 안 들면 안 되나, 오장육부조차 원망스럽다. 다른 가녀린 처자들처럼 우..
[독일맥주] 병이냐 캔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모니터를 가득 메운 활자를 멍하니 들여다 보다 화들짝 깼다. 아, 나 졸고 있었구나. 기지개로 몽롱한 기운을 떨치고 일어나 보니 창 밖엔 비가 내린다. 하염없이 주룩주룩. 맥주 딱 한 잔이 생각나는 날씨다. 때마침 핸드폰이 아바의 댄싱퀸을 목놓아 부른다. 액정에 표시된 이름은, 아니나 다를까 세바스티안이다. 전화를 건 사연을 99퍼센트 짐작했지만, 나는 짐짓 모르는 척 받아보기로 했다. “바스티 (*주: 세바스티안을 줄여서 바스티라고 부르기도 한다), 웬일이야?” “이작, 비가 맥주를 불러. 딱 한 잔 어때?” 피식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아직 한낮이지만 뭐 어떠랴. 나는 오전부터 맥주를 마셔도 그다지 이상하지 않은 나라, 독일에 산다. 바스티를 알게 된 건 독일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