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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 2DAY

참이슬 한잔 기울이는 첫사랑 이야기, 건축학 개론 VS 러브레터

영화 대 영화 #1 첫사랑 영화, 건축학개론 vs 러브레터


날씨가 갑자기 추운 요즘. 본격적으로 겨울이 왔다고 느껴지네요. 포장마차에서 뜨끈한 국물과 소주 한 잔으로 추위를 달래보기도 합니다. 그렇게 또 술이 들어가면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고 이야기 안주로 빠질 수 없는 것이 소주처럼 달콤한 첫 맛에 씁쓸한 뒷맛에 캬아 하며 말할 수 밖에 없는 첫사랑 이야기...
 
첫사랑이 특히 쓴 것은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라는 속설 때문이기도 하죠. 어쩌면 그 말은 실연으로 인한 마음의 한파 속, 그래도 생각하면 그 시절이 유독 하얀 눈처럼 밝아 보이는 아름다움과 닮아서 그런 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지금 이 겨울처럼 말이죠. 그래서인지 첫사랑 영화들 중에는 겨울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이 있네요.
 
그래서 오늘 비어투데이 영화 VS 영화 첫 시간에는 겨울을 배경으로 소주 한 잔에 생각나는 첫사랑 영화 두 편을 가지고 이야기 해보도록 할게요. 바로 <건축학개론> VS <러브레터>입니다. *줄거리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들어있으니,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영화를 보신 뒤에 읽어 주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그 첫사랑 잘 지내고 있나요?"

비교 포인트 1. 서툴지만 열정 가득했던 신입생 시절에 만난 첫사랑


여러분들의 첫사랑은 언제부터였나요? 비교적 대부분 학창시절에 많이 만납니다. 이유인 즉 사회의 때가 아직 덜 묻었고 모든 것이 서툴지만 열정 하나만큼은 역대 인생 중 최고였던 시절이기 때문이죠. 오늘 소개 할 첫사랑을 다룬 두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건축학개론>은 8090 대학시절에 만났습니다. 고등학교 입학 후 모든 것이 달라진 그 시절, 어쩜 사랑에 대한 마음도 신입생처럼 어리버리 하지만 산뜻하지 않았을까요?



반면 <러브레터>는 중학교 시절에 만납니다. 그러고보면 초등학생에서 중학생, 고등학생에서 대학생 등. 기존의 체제가 확 바뀌는 타이밍에서 첫사랑을 만난다라.... 시절은 다르지만 그 설렘의 절대값은 같을 듯.
 

비교 포인트 2 <건축학개론>과 <러브레터> 다른 듯 비슷한 배역 구성


 
두 영화를 비교하게 된 것은 비단 첫사랑뿐만이 아닙니다. 바로 배역 구성이 다른 듯 비슷한 묘한 구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건축학개론> 같은 경우 같은 인물(승민, 서연)을 현재/과거 시절로 구분 해 다른 배우를 캐스팅했습니다. 쉽게 말해 같은 사람 다른 배우. 현재 승민은 엄태웅, 과거 승민은 이제훈. 현재 서연은 한가인 과거 서연은 수지. 이렇게 같은 인물이지만 다른 배우를 캐스팅해서 마치 두 사람의 첫사랑을 보는 듯한 착각을 주죠. 그 사이 묘하게 연결되는 코드가 뭉클한 것이 <건축학개론>의 매력입니다.



반면 <러브레터>는 같은 배우에 다른 인물을 설정했습니다. 후지이 이치키(남)의 현재 사랑 히로꼬와 과거 첫사랑 후지이 이츠키(여) 역에 나카야마 미호가 열연하죠. 흔히 말해 '나의 첫사랑과 닮았기에 반해버린 설정'을 영화 속에 대입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카야마 미호가 같은 얼굴이지만 상반된 성격으로 연기해 초반에 관객들이 많이 헷갈리기도 했다는. 그리고 몇몇 여성팬들은 첫사랑 이츠키(여)과 닮아서 히로꼬를 좋아하게 된 남자 이츠키에 대한 원망도 있었다는 이야기가.... 결국 그 만큼 이츠키(남)에게 이츠키(여)에 대한 첫사랑의 잔상은 깊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비교포인트 3 첫사랑을 이어준 매개체


 
이 세상에 눈떠보니 사랑에 빠지는 것은 없습니다.  어느 순간 두근거리며 슬며시 올라오는 감정이 있지요. 그리고 그 감정은 어떤 매개체를 통해 분명해집니다.


<건축학개론>의 승민과 서연이 만나는 매개체는 같은 과목 수업 '건축학개론'이 첫 번째며  같은 동네게 같은 과제를 해서 붙어다녀야 하는 운명적[?]고리가 두 번째,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첫사랑 상징이나 다름없는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 CD가 마무리입니다.


<러브레터> 역시 같은 이름으로 인한 출석부 혼동이 첫 번째, 그리고 운명의 장난처럼 이름이 같은 것도 어색해 죽겠는데 무려 3년 동안 같은 반. 하지만 그런 미묘한 감정 속에 두근 거림으로 전환시켜주는 것은 '후지이 이츠키 스트레이트 플래쉬 도서카드죠.
 
그러고보면 두 작품의 첫사랑이 이어지는 매개체가 은근 비슷합니다. 먼저 같은 과목이나 같은 수업을 듣는 다는 것,  그리고 과제나 시험을 통해서 함께하는 것. 마지막으로 당시에는 알 수 없었던 진짜 속마음이 담긴 매게체가 농담처럼 영화 중간에 나오지만 마지막 엔딩에서 다시 울린다는 것이죠.
 

비교포인트4 첫사랑, 여전히 아름다울까?


 
두 영화 다 첫사랑을 상당히 말랑한 느낌으로 풀어 과거의 노스텔지어를 제대로 자극합니다. 하지만 첫사랑의 판타지를 심어주되 결코 두 영화는 판타지 속 현실의 가혹함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첫사랑이 여전히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는 것을 말하죠.


<건축학개론>같은 경우 다시 만난 승민과 서연에게 어색한 기류가 흐리는데 일단 승민은 예전처럼 쑥맥이거나 어리버리 하지 않다는 것이죠. 현실에 찌든 모습에 불만도 툭툭 내뱉고 사회의 쓴 맛을 다 먹은 듯한 아저씨가 되었습니다. 서연은 더하죠. 서연은 결혼실패로 살짝 어른 사춘기에 들어있습니다. 결국 제주도에서 술을 먹고 욕설을 내뱉으며, 알맹이 없는 매운탕 같은 자기 인생을 첫사랑 앞에서 한탄하기도 합니다.


<러브레터>는 <건축학개론>에 비해 첫사랑 판타지를 오래 유지하지만 가장 극단적인 현실의 잔혹함을 이야기합니다. 수 년 동안 잠들어있던 첫사랑의 기억을 히로꼬 때문에 봉인 해제한 이츠키(여). 자신들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던 중학교에 찾아가 이츠키(남)의 안부를 묻지만 그의 죽음을 알게 됩니다.. 이때 갑작스러운 고열로 큰 고통을 겪는 것도 내 기억 속 첫사랑이 이제는 없다는 현실의 충격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두 영화 다, 첫사랑이 기억 속에 멀어진 만큼 그 만큼 현실 속에 첫사랑 또한 같이 바래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비교포인트 5 첫사랑, A winter story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건축학개론> VS <러브레터>는 첫사랑을 다룬 영화임과 동시에 겨울이 꽤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품입니다. 두 영화의 명장면이 모두 겨울에 있기도 하고요.  또한 겨울을 배경으로 사랑의 인연의 끈을 놓는다는 것도 비슷합니다.



<건축학개론>은 승민은 첫 눈 오는 날 서연에게 고백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아시죠? ‘꺼져줄래’가 된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연은 첫 눈 오는 날, 둘이서 함께 한 그 집으로 찾아가 승민을 기다립니다. 영화상에서 가장 진한 화장을 한 서연. 즉 승민에게 이제는 친구가 아닌 여자로 다가가고 싶었지만 이미 마음에 큰 상처를 가진 승민은 나오지 않고 두 사람의 매개체가 된 ‘기억의 습작’ CD만을 남기고 떠납니다. 이로서 두 사람의 첫사랑은 막을 내리고 말죠.

<러브레터>에서는 이츠키(남)이 죽은 산을 히로꼬가 찾아갑니다. 즉 이미 떠난 그를 완전히 놓아주기 위한 자신만의 이별여행이죠. 처음에는 그 현실이 두려워 피하지만 히로꼬는 눈으로 덮인 산을 향해 외칩니다. 그 곳에서 아직도 있을 것 같은 이츠키에게 말하는 것처럼요.

"잘 지내고 있나요? 저도 잘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단순히 히로꼬에게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뒤늦은 첫사랑 열병을 앓고 있는 이츠키 (여)에게도 그때 미처 알지 못했던 감정의 고백으로 메아리 칩니다. 한 남자를 두고 두 여자의 서로 다른 인사, 하지만 아름다웠습니다.

 

에필로그, 첫사랑이 남긴 작은 행복.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다


 
이제 마지막. 두 작품 다 냉정하게 결론을 말하자면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첫사랑은 추억으로 놔두고 현실에 충실하자고 말합니다. <건축학개론> 승민은 서연의 뒤늦은 고백을 뒤로하고 은채와 미국으로 떠났으며 히로꼬도 죽은 이츠키를 가슴에 밀어놓고 아키바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합니다.  이츠키(여)도 뒤늦은 첫사랑 열병을 이겨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죠.
 
그런데 말이죠, 여기서 다 알고 있지만 뭉클하게 다가오는 작은 반전, 아니 첫사랑이 남긴 작은 행복(small happiness 주: Small Happiness는 영화 <러브레터> OST의 엔딩곡입니다.)이 배달됩니다.


<건축학개론>에서는 영원히 자신을 원망하고 있다고 생각한 승민에게 몇 년 전 서연이 남겼던 마음이 둘이 함께했던 ‘기억의 습작’ CD가 배달되고 [즉, 그 날 오지 않았다고 생각한 서연이지만 승민은 서연을 생각해 결국 뒤늦게 왔다는 것을 의미]


<러브레터>에서는 어렴풋하게 자신을 좋아했다고 생각한 남자 이츠키의 진짜 마음이 도서카드에 담겨 배달되죠. 두 작품 다 공교롭게 자신의 집으로 누군가의 배달로 온다는 것이 닮았습니다. 첫사랑은 첫사랑으로 남겨두어 좋은 추억만을 가지고 하려는데 뒤늦게 배달되는 두 남자의 진심, 이 뭉클한 마음에 어쩔 줄 모르는 그녀들은 그냥 미소만 머금습니다. 근데 뭐죠? 그 미소 속에 살짝 비치는 눈물은. 다시 만나기 힘들지만, 그 첫사랑들이 남긴 Small Happiness, 그 의미는 


그래,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말로 사랑하는 영화, 아니 제 첫사랑 보다 더 사랑한 영화 <건축학개론>과 <러브레터>를 비교하니 괜히 뭉클하네요. 두 영화를 보면서 현실의 바쁨 속에 잊었던 첫사랑이 생각나 마음이 설렙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 하나. 여러분들은 만약 첫사랑을 만날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실 건가요? 다시 만나 그때 못다한 이야기를 할 것인지, 아님 내 기억 속 언제나 ‘이터널 션사인’하게 좋은 추억으로만 남기고 싶을 건지. 두 영화의 마지막 여운은 어쩜 이 질문에 대한 미소 담긴 진심의 대답이 아닌가 싶어요.
 
내 기억의 습작 속 첫사랑, 잘 지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