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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2DAY

[유럽생활] 독일인은 맥주를 사랑해! 12, 슈닉 슈낙 슈눅(Schnick Schnack Schnuck)

가위바위보, 독일어로는 슈닉 슈낙 슈눅(Schnick Schnack Schnuck). 각자는 가위와 바위와 보자기, 세 가지 상징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고, 상대와 내가 서로를 이길 확률이 정확히 같은 만국 공통의 놀이다. 그런데 가위바위보 놀이를 거듭 하다 보면, 이기는 사람에겐 계속 이기고, 지는 사람에겐 계속 지는 경향이 생긴다. 가위나 바위나 보를 내는 찰나의 순간에, 이기는 사람은 상대의 마음을 잘 간파하고, 지는 사람은 상대에게 마음을 잘 들키기 때문인 듯하다. 그래서 가위바위보는 일종의 심리게임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내 생각에 이 심리를 읽는 순간의 재미를 극대화한 놀이가 가위바위보의 변종,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가 아닌가 싶다.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어느 오후, 저녁 내기 삼세판 가위바위보를 하자는 바스티에게 나는 그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를 가르쳐주었다. 지역별로 가사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일단은 내가 배운 대로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 감자감자 뽕! 하나 빼-기!’하고 말이다. 승리는 물론 놀이의 전수자인 나의 차지였다.

독일인은 맥주를 사랑해!
Die Deutschen lieben Bier!
"인산인해로군."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아드벤트(Advent, 크리스마스 전 4주의 기간) 주말다운 풍경이었다.
"매년 돌아오는데도 이 시기는 은근히 기다려진다니까."
큰 통에 데워놓은 글뤼바인(Glühwein, 설탕, 계피 등을 넣고 뜨겁게 데워 마시는 와인)이 달콤한 냄새를 풍겼다.
"이 시기에 파는 먹거리를 기다리는 게 아니고?“
바스티가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물었다. 뒤편 가게 주인장이 갓 구운 감자치즈빵을 오븐에서 꺼냈다.
"기왕이면 우아하게 들리는 게 좋잖아.“
"그럼, 우아하게 들리면 좋지. 그런데 이작, 글뤼바인 말고 이 시기에 놓칠 수 없는 마실 거리가 또 있다는 사실을 알아?“
"그게 뭔데?“
"글쎄.“
바스티는 시침을 뚝 떼고 길을 안내했다.
크리스마스시즌에 마시는 바이나흐츠비어(Weihnachtsbier)

크리스마스시즌에 마시는 바이나흐츠비어(Weihnachtsbier)

산타는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언덕길에 썰매를 세웠다. 착한 아이들에게 마지막 선물까지 나눠주고 집으로 돌아오니, 내내 밝은 코로 길을 밝힌 루돌프는 피곤하다며 일찍 들어갔다. 산타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휴우-. 맥주나 한 잔 하고 들어갈까.“
그는 올해도 무사히 임무를 마쳤음에 감사하며 작은 잔에 맥주를 채웠다. 거품이 하얀 눈처럼 부풀었다. 산타는 황금빛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꼴깍 싸르르. 청량함이 스러지고 구수한 맛이 입안을 감돈다.
"맛있는데!“
"좋아할 줄 알았어.“
잠시 상상에 빠졌던 나에게 바스티가 말했다.
"근데 양이 왜 이렇게 작아?“
나는 작은 잔을 들어 보엿다.
"싸구려 간의 소유자를 배려하는 차원이랄까.“
"응?“
"물론 큰 잔으로 마실 수도 있지만, 바이나흐츠비어는 보통 맥주보다 2-2.5%정도 알코올함유량이 높거든.“
"오호. 뭐랄까, 시기에 적절한 변화네.“
그새 주문했던 감자요리가 식탁에 놓였다.
"변화하면 또 감자를 빼놓을 수 없지. 싹 나고 잎 나면 못 먹지만.“
바스티는 통감자를 절반으로 가르며 툴툴댔다.
피칸테 카슬러 카토펠판네(Pikante Kassler-Kartoffelpfanne). 자우어크라우트(Sauerkraut)와 돼지목살, 달걀프라이를 곁들인 볶은 감자요리
피칸테 카슬러 카토펠판네(Pikante Kassler-Kartoffelpfanne) : 자우어크라우트(Sauerkraut)와 돼지목살, 달걀프라이를 곁들인 볶은 감자요리
학스테이크(Hacksteak)와 오븐에 구운 통감자

학스테이크(Hacksteak)와 오븐에 구운 통감자

나는 픽 웃어버리곤 "맛있게 먹을게.“로 응수했다. 독일에선 한국의 김치나 다름없는 자우어크라우트, 그리고 포곤포곤한 감자의 식감이 잘 어울렸다.
"한국에서도 감자를 삶고, 튀기고, 끓이고, 부치고, 요리법이 오만 가지는 되는 것 같은데. 독일에도 무척 많겠지? 동서양을 통틀어 이렇게 보편적이고 변화무쌍한 재료가 또 있을까.“
내 말에 바스티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체로도 맛있지만 다른 어떤 재료와도 잘 어울리는 덕이겠지. 거의 매끼 식탁에 올라오니까 평소엔 잊고 지내지만, 사실 감자가 빠지면 식사가 이상해지잖아.“
"크리스마스 없는 12월처럼.“
"맥주 없는 저녁처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코트주머니에 손을 꽂고 한발 앞서 걸어가는 바스티의 뒷모습을 보았다. 평소엔 잊고 지내지만, 빠지면 이상해지는 게 또 있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바스티?“
"응?“
그가 돌아보았다. 언제나 같은 모습이지만 조금 달랐다. 아마도 거리를 장식한 불빛 때문인지도 몰랐다.
"같이 가.“
나는 바스티의 곁에서 나란히 걸었다. 크리스마스에 들뜬 겨울저녁이 조금씩 깊어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