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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2DAY

[독일맥주] 현장에서 즐기는 옥토버페스트⑥ - 옥토버페스트는 누가 만들었을까

세월을 거슬러 200년 전인 1810년 10월 12일, 바이에른의 왕세자였던 루드비히 1세는 작센힐드부르크하우젠의 테레제 공주를 비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은행가이자 기병대장이던 안드레아스 폰 달라미는 왕세자의 결혼식을 앞두고 어떻게 하면 성대하게 치를 수 있을까 곰곰이 고심을 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왕인 막시밀리안 1세를 만나 이렇게 얘기합니다.
  “승마대회를 여시죠, 폐하.”
그래서 그 해 10월 17일 길고 화려한 피로연은 승마대회로 개최되었습니다. 최초의 옥토버페스트가 열린 것입니다.

현장에서 즐기는 옥토버페스트⑥ - 옥토버페스트는 누가 만들었을까

마리엔플라츠(Marienplatz)는 여전히 옥토버페스트의 흥겨운 분위기가 충만합니다. 복작거리는 거리의 한 켠에는 맥주전문점 정문을 지키는 돼지 동상도 있고, 이름난 맥주가게를 가리키는 표지판도 있습니다.
맥주전문점 정문을 지키는 돼지 동상

맥주전문점 정문을 지키는 돼지 동상

호프브로이하우스(Hofbräuhaus) 앞도 축제와 맥주를 즐기려는 손님들로 붐빕니다.
 호프브로이하우스(Hofbräuhaus)앞

호프브로이하우스(Hofbräuhaus) 앞

그런데 옥토버페스트와 뗄래야 뗄 수 없는 맥주가 처음부터 축제의 주인공은 아니었다고 해요. 옥토버페스트가 생기기 훨씬 이전부터 바이에른에서는 화재의 위험 때문에 9월 말부터 4월말까지만 맥주를 제조할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해두었는데요, 그래서 새로 맥주를 빚을 시즌이 되면 그 동안 저장해두었던 메르첸비어(Märzenbier)를 다 마셔버리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옥토버페스트의 원조였던 셈이죠.
루드비히 1세와 테레제 왕세자비는 바로 그 즈음에 결혼식을 올렸는데요, 피로연으로 열었던 승마대회가 큰 인기를 끌면서 왕실은 다음해에도 같은 기간에 승마대회를 열기로 결정합니다.
당시 왕가가 살던 뮌히너 레지덴츠(Münchner Residenz)는 마리엔플라츠에서 그리 멀지않은 막스요제프플라츠(Max-Joseph-Platz)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광장의 중심에 선 막시밀리안 1세의 동상 아래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잠시 발을 쉬어갑니다. 레지덴츠 안으로 잠깐 들어가 볼까요?
몇 백 년 동안 증축과 보수를 반복한 뮌히너 레지덴츠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로코코 풍의 건축양식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대부분이 박물관으로 개방되었죠. 역대왕조가 쓰던 장식물 등에서도 건물자체 못지 않은 화려함이 느껴집니다.
왕가의 결혼식 이후로 해마다 축제는 발전했습니다. 테레제 왕세자비에게서 이름을 따온 테레지엔비제(Theresienwiese)에는 1850년과 1853년, 20미터 높이의 바바리아 동상과 루메스할레(Ruhmeshalle)가 각각 세워졌고, 1880년에는 드디어 맥주의 판매허가가 떨어졌습니다. 그리곤 속속 맥주텐트들이 들어섰습니다. 바야흐로 맥주축제의 면모를 서서히 갖추기 시작한 시점이죠.
맥주박물관(Biermuseum)에 재현해 놓은 옛 선술집의 모습

맥주박물관(Biermuseum)에 재현해 놓은 옛 선술집의 모습

맥주박물관(Biermuseum)에 재현해 놓은 옛 선술집의 모습
하지만 옥토버페스트의 역사가 평탄하기만 하진 않았습니다. 전쟁이 발발했던 동안에는 옥토버페스트 역시 자취를 감추었고, 1980년에는 끔찍한 테러사건이 일어나 많은 인명이 희생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토버페스트는 200년간 명맥을 이어왔습니다. 그리고 명실상부 세계최대의 맥주축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죠.
그 배경에는 전통을 아끼고, 맥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어느덧 가을입니다. 독일은 한낮에도 쌀쌀한 바람이 불고, 나뭇잎들도 붉거나 노랗게 물이 든 지 오래입니다. 그러나 뮌헨을 떠나기 전 한 군데 더 들려야 할 곳이 남았습니다. 이제는 도심에서 벗어나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그곳에서 옥토버페스트의 마지막 이야기 '현장에서 즐기는 옥토버페스트⑦ - 맥주와 함께하는 여행길. 가을로’로 다시 만나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