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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icious 2DAY

낡은 양은냄비를 달구는, 속 시원한 닭한마리 - '동대문 닭한마리골목'


대한민국 국민들의 ‘치느님’ 사랑은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 아닐까 합니다. 학창시절 학교 앞에서 먹었던 닭꼬치와 닭강정으로 시작하여 치킨, 닭볶음탕, 삼계탕, 닭백숙으로까지 그 포용력 또한 진화해나가죠. 양념맛으로 먹던 치킨에서 닭 고유의 담백함을 즐길 수 있는 단계라야 진정한 ‘치느님’ 신봉자라 할 수 있겠는데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성인의 반열에 오른 당신께, 20대에 접어든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초딩 입맛만을 고수하는 당신께, 성인이라면 한번쯤 제대로 맛봐야 할 닭요리와의 만남을 위해 ‘동대문 닭한마리골목’을 소개합니다.


동대문의 미스터리, 생선골목 옆 닭한마리

‘닭한마리’라는 이름은 참으로 미스터리합니다. 조리방법을 보여주지도, 짝을 이루는 재료가 드러나지도, 심지어 맛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조차 없습니다. 그리하여 ‘닭한마리’ 전문점이 몰려 있다는 ‘동대문’에서 직접 확인해보기로 결정! 1,4호선 동대문역에서 하차하여 9번 출구로 나와 쭈욱 진진하여 기업은행이 나오면 왼쪽으로 꺾어 들어옵니다. 그 거리의 중간쯤까지 오면 오른쪽 골목에서 생선 굽는 냄새가 솔솔 피어나오는데요. ‘닭한마리골목인데 웬 생선 냄새?’냐며 불안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대로 찾아온 것이 맞기 때문입니다.



일단, 생선 냄새를 따라 골목 안쪽으로 따라 들어가면 왼쪽으로 지글지글 생선을 굽는 집이 일렬로 쭉 이어집니다.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동대문 생선구이골목’이죠. 그리고 생선구이집 맞은편, 골목의 또 다른 평행선을 그리는 그곳에 ‘닭한마리’ 간판을 내건 집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냅니다. 생선구이골목과 닭한마리골목은 그렇게 사이좋게 마주보고 1타2피의 맛골목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칼국수에서 시작되어 시원한 국물 닭요리로 진화


이름만으로는 조리법을 짐작하기 힘든 ‘닭한마리’이지만 이 골목에 들어오면 금세 감이 잡힙니다. 일단 ‘칼국수’라는 세 글자가 힌트이고, 가게마다 양은냄비에 팔팔 끓고 있는 맑은 국물이 또 다른 단서가 됩니다. 지금의 ‘닭한마리’의 원조가 되는 것이 바로 닭칼국수이기 때문입니다. 구수하고 시원한 국물에 쫄깃한 면발, 거기에 닭고기까지 더해진 칼칼한 닭칼국수 한 그릇은 30여 년 전부터 이곳 동대문 인근 상인들의 배를 든든하고 뜨끈하게 채워줬던 메뉴였습니다. 그것이 발전하여 지금의 ‘닭한마리가’가 된 것이죠. 



‘닭한마리’는 칼국수에 닭고기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끓인 닭육수에 칼국수 사리를 더하는 명실상부 닭요리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맛골목이 다 그렇듯 ‘원조’ ‘시조’를 내세우는 간판이 시선을 끕니다. 보통 맛골목에 가면 유명세가 있는 집과 아닌 집의 편차가 큰 편이지만 ‘동대문 닭한마리골목’은 저녁시간이 되자 어느 가게를 둘러보아도 손님들이 북적북적합니다. 


닭 한 마리를 통째로 품은 양은냄비의 팔팔함


그렇다면, 닭한마리의 인기 비결, 직접 확인해봐야겠죠? 가까운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봅니다. 그런데 첫 번째로 신속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메뉴가 단순하다보니 두 명이서 들어서면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기본 2인인 닭한마리 세팅이 눈 깜짝할 새 이뤄집니다. 감자, 파, 가래떡, 닭한마리가 든 양은냄비가 중앙에 놓이고, 부추와 국물 자작한 김치 한 사발이 테이블을 채웁니다. 양은냄비를 달구는 동시는 오늘의 주인공인 닭이 육수 안에서 밖으로 모습을 보이는데요. 이제 두 번째로, 닭한마리의 푸짐함에 미소 지을 차례입니다. 육수에 들어가는 닭은 그야말로 잘 손질된 닭 한 마리 통째. 가게의 점원이 닭을 가위로 먹기 좋게 잘라 육수에 다시 투하해준답니다. 


매콤새콤한 부추무침, 닭한마리 최고의 단짝 


닭과 사리가 끓는 동안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으니 닭한마리의 단짝, 부추무침을 만드는 일입니다. 새콤, 달콤, 매콤, 알싸한 부추무침은 닭한마리의 세 번째 매력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담백한 닭고기에 감칠맛을 더하는 닭한마리 최고의 단짝이랍니다. 전문가에게 전수받은 레시피를 공유하면, 일단 빨간 다데기를 한 스푼 넣고, 식초를 1회전하여 두른 다음, 겨자를 콕 더하고, 양념이 잠길 때까지 간장을 더해줍니다. 이렇게 완성된 양념장에 부추와 다진 마늘을 넣고 한번 더 버무리면 상큼하고 매콤하게 입맛 돋우는 부추무침이 완성! 닭한마리 먹을 때 이걸 빼먹으면 닭 반마리만 먹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마무리는 역시 칼국수, 칼칼한 목넘김이 최고 

 


냄비의 육수가 팔팔 끓고 난 다음, 먼저 익는 떡부터 시작해 닭고기, 감자까지 이 부추 양념과 곁들어 먹으면 그 맛이 일품입니다. 아, 함께 나온 시큼하게 잘 익은 김치는 육수에 넣어 함께 끓여먹어도 되고, 보쌈처럼 살포시 닭고기를 싸 먹어도 그 조화가 훌륭하답니다. 닭한마리의 원조가 닭칼국수였던 만큼 마무리는 칼국수로 하는 게 닭칼국수의 정석이라고 할까요? 아랫배까지 뜨뜻한 그 맛, 이마에 땀은 송골송골 맺히지만 ‘시원하다’는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그 시원함을 음미하셨다면 축하합니다! 닭요리 레벨이 한 단계 업 되신 것입니다. 


패션1번지 동대문과 청계천 나들이 


동대문까지 와서 닭한마리만 먹고 가긴 좀 아쉽지요. 닭한마리골목을 나와 2~3분만 걸으면 청계천이 나오고, 다리만 건너면 동대문 평화시장으로도 건너갈 수 있답니다. 패션의 거리를 자처하는 곳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지만, 그 원조인 동대문의 위엄은 따를 수 없겠죠. 다양하고 신기한 패션 부자재도 구경하고 젊은 디자이너들의 개성 있는 감각도 눈요기 하며 동대문 패션 타운을 걸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한층 부드러워진 봄바람을 맞으며 걷는 청계천 산책은 또 하나의 매력입니다.



[동대문 닭한마리골목]

주소: 서울 종로구 종로40가길 골목 

찾아가는 법: 1,4호선 동대문역 9번 출구에서 도보로 5분